트위터와 페북에서 이렇게("트위터 페북, '중국 실험실서 코로나 제조' 주장에 '허위정보' 경고") 경고를 주는 게 전체주의 사고방식. 이게 요즘 세대의 포용(inclusion)과 다양성(diversity)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걸 혐오 또는 거짓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이 요즘 시대의 포용과 다양성의 정의다. 1. 소셜미디어에서 이렇게 정보의 은폐가 가능한 이유는 이 세상이 많이 좌경화되었다는 뜻. 1910년대부터 서서히 증가하여 1920-1930년대에 꽃을 피운 진보주의(progressivism)의 반복이다. 딱 100년이 걸렸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진보주의하면 앞선 생각을 하는 사람들, 인류의 발전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사상인 줄 안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2. 진보주의는 인간의 기고만장함에서 나온 사상이다. 못살 때는 못사는 사람 중에 기고만장한 놈이 나타나 못사는 사람들을 선동한다. 잘살 때는 모두가 잘살기 때문에 대부분이 기고만장하다. 특히 모두 잘살 때는 특별히 몸을 써서 고생하지 않고 머리와 입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지식층(intelligentsia)이 거대해진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로부터
[광회문 외침] "우리가 침묵하면 길가에 돌들이 외칠 것이다" (2020.9.17(목)) No. 1 1. Sujin Chi 제가 감히 여기에다 글을 남겨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전 마흔네살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갑자기 확 바뀐 세상이나 개혁이 아닌 그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평안히 자신의 삶에 충실해 그만큼의 대가를 얻고 만족을 얻는 것일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와서 뭘 한다고 되겠어? 라고 반문하지만,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수수방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자유권 포기와도 같은 것일거라 생각하기에... 내 아버지가 열일곱 어린 나이에 제2국민병으로 차출되어 가족들과 떨어져 전쟁을 치른 나라입니다. 계속되는 행군에 몇날 몇일을 잠을 자지 못해 행군하다 쓰러져 죽는 전우도 보았고, 피난민들이 바닷가에서 굽는 고등어 냄새에 주린 배를 움켜쥐며 눈물을 삼키고 계속해서 행군했다 합니다. 내 아버지의 꽃같은 시절과 청춘을 바친 나라 이제는 우리가 지킬 차례입니다. 이대로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대한민국을 문재인이 집어 삼키게 놔둘 순 없습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 했습니다. 우리가 울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마스크 착용 반대 시위 스페인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은 뛰어나지만,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선진국이라 부르기에는 한심할 정도로 뒤쳐져 있습니다. 장사에 능하고 돈 많은 유대인이 밉다고 몽땅 다 쫒아 냈다가 경제 폭망도 겪어 봤고, 과학과 의학의 실험과 증거들이 뇌뽕에 심취한 카톨릭을 하나 하나 까부수는 꼴을 두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아서 왕의 명령으로 250년 간 과학과 의학을 아예 금지했을 정도니까요. 1. 과학과 의학을 금지 시킨 250년 동안 주변 유럽 국가들의 과학과 의학은 한 없이 발전 했지요. 중국, 한국, 일본이 3,000년 간 과학과 의학을 등지고, 관념에 사로 잡혀 살아 왔을 때 유럽의 백인들은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을 존중하며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보기 싫은 곳을 보면서 벽돌 쌓듯이 차근차근 실험하고 논문 쓰며 과학과 의학, 기술을 발전 시켜 왔습니다 . 스페인에 가시면 골목 골목 걸어 다니면서 내셔널 브랜드를 가진 큰 유통점이나 식당이 얼마나 있는지 찾아 보세요.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2. 재벌이 될 수 있는 전국 체인이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맞는데 빵집도 동네 빵집만 있고, 수퍼도 구멍가게같은 동네수퍼만 있고, 식당
2017년 5월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은 대기업 중심적인 경제 환경을 개혁하겠다며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였다. 물론 전임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처음 임기를 시작할 때, 신생기업 지원과 창조경제를 강조했지만, 삼성 그룹의 후계자 이재용과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되면서 스캔들에 휘말려버렸다. 문재인도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경제정책을 시행해서 소비를 확대하고 분수효과를 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최저시급의 인상과 '공무원 늘리기'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개혁의 원동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시행한 '개혁'을 위한 걸음이 "헛발질 '문'워킹"이라고 지적을 받게 되며, 국가 부채는 급격하게 증가를 하고 있으나 경제'개혁'은 어디에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슬픈 현실이다. 1990년대 이후 최악의 경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경제 성장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1.3%로 예상된다고 한국은행에서 발표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겪게 된 경제 불황기는 한국이 겪고 있는 가계부채의 문제를 밝히게 되었다. 최근 국제금융협회 분석에 의한다면 한국은 39개의 경제국 중에서 가장 큰 가계부채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낮추게 된다면 가계부
[이영세 유학일기 5] "로버트 섬머즈 교수를 만나다" 1. 첫 학기 첫 시간의 충격이 지나갈 즈음 학과에서 학과장 주최로 신입생환영회를 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환영회는 학과장의 사저에서 한다고 하였다. 당시 학과장은 로버트 서머즈(Robert Summers)교수였다. 나중에 나는 그로부터 통계학을 배웠고 그의 grading assistant로도 인연을 맺은 인물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잘해주려는 열정이 넘쳤으나 미국학생들은 웬지 좋아하지 않았다. 정해준 날짜에 신입생환영파티에 참석하러 그의 집에 갔다. 그의 집은 필라근교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전형적인 upper middle class의 저택이었다. 2. 마당에 생맥주를 따라마실수 있는 술통과 스낵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부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몇명의 교수도 있었다. 로버트 서머즈교수는 그 아들이 로렌스 서머즈(Lawrence Summers)로 클린턴행정부때 재무장관을 하고 하바드대학 총장도 역임한 유명한 경제학자이었다. 서머즈 학과장은 그 어머니가 사무엘슨가에 시집을 가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을 낳고 난 뒤 남편이 죽어 서머즈가에 개가하여 로버트 서머즈를 낳은 것이다. 말하자면 폴
[이영세 유학일기 4] "전쟁은 시작되었다" 1. 드디어 9월2일 첫 학기 첫 시간이 시작되었다. 첫 학기에는 거시경제(macroeconomics), 미시경제(microeconomics), 선형대수(linear algebra) 세 과목을 신청하였다. 모두 필수라서 다른 선택여지도 없었고 그것이 선수과목이라 다른 과목을 들을 수도 없었다. 단지 미적분학(calculus)도 필수였지만 면제시험이 있어 합격하여 면제되었다. 거시경제 첫 시간에 숨죽이고 제일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에 부르진을 입고 샌달을 신고 티셔츠차림의 키큰 젊은 남자가 교단에 올라오지 않는가? 나는 순간 문화충격을 받았다. 2. 한국서는 장발족은 길거리에서 잡혀 머리를 깍이는 나라인데 미국서는 교수가 장발을 하고 있다니...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자유의 나라 미국이 아닌가라는...교수는 제르 베르만(Jerre Behrman)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출석을 불렀다. 강의실에 35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반은 미국인, 반은 아시아, 남미, 유럽, 아프리카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각국에서 온 인종전시장처럼 다양한
[이영세의 유학일기 3] "오랜 친구와 뜻밖에 만나다" 1. 이윽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였다. 필라 유펜에는 내 고교 친구가 먼저 와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공대 나와 금속공학을 전공하는 공학도였는데 내가 미국가기 전에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그곳 상황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개학이 임박하여 국제전보로 그저 "Come to Philadelphia"라고만 보내왔다. 그래서 전혀 그곳 사정을 모른체 간 것이다. 그는 학교캠퍼스가 있는 international house란 당시 기준으로 모던한 아파트에 이미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저녁을 자기 아파트에서 하자고 하였다. 나는 아직 아파트도 정하지를 않아 갈 곳도 없었다. 2. 친구 아파트에 가니 그기에 왠 낯익은 친구가 앉아있지 않은가? 깜짝 놀라 자네가 어찌 여기에 있나?라고 물었다. 그는 내 중고교 동기로 클럽활동을 같이 한 친구인데 서울치대를 다니다가 부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2년전 중부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부부와 함께 친구 아파트에서 필라에서 첫날 만나다니...그는 유펜 덴탈스쿨에 입학허가를 받아 왔다는 것이다. 필라에 온 첫날 고교친구
[이영세의 유학일기 2] "1970년대 미국 도시의 실상을 보다" 1. 그러나 막상 필라델피아에 가까이 오자 미국에 대한 환상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건물 벽마다 흑인이 갈겨 쓴 낙서들이 즐비하였고 길에는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기로 된 유펜 캠퍼스에 가까이 오자 이러한 나의 실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학교주변은 슬럼이었다. 우중충한 낡디 낡은 집들에는 흑인들과 노인들만 살고 있는 듯했다. 학교 캠퍼스도 캠퍼스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길위에 낡고 낡은 학교건물만 있고 내가 상상하던 넓고 푸른 잔디위에 아름다운 건물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2. 내가 미국까지 공부하러 왔는데 이런 캠퍼스에서 앞으로 몇 년간을 지내야 한다니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왔다 싶은 후회가 생겼다. 그제사 한국에서 어느 교수분이 내가 유펜간다고 하니까 미국에 아름다운 캠퍼스가 많은데 하필이면 슬럼에 둘러쌓인 그런 대학에 가느냐 공부도 좋지만 경치좋은데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의 실망감은 날이 갈쑤록 더 심해졌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범죄율이 전 미국 4위가 되는 도시여서 시장이 치안을 담당하는 이탈리아계의 경찰출신이라고 하였다. 더욱 놀
* 서강대 교수를 지냈고, 1972년에 펜실베니아대에서 유학했던 이영세 박사님의 유학기를 싣습니다. 1970년대 미국 유학 시절의 단면을 이해함과 아울러 한 개인의 유학기를 통해 통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영세의 유학일기 1] "1972년 유펜으로 유학길에 오르다" 1. 코로나19와 장마가 오래 계속되니 자연 옛날 생각들이 자꾸난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유학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것같다. 꿈이 있었고 장래 무언가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같은 희망과 자신감이 넘칠 때였다. 나는 1972년 내 나이 26세때 미국 유학을 갈 행운을 가졌다. 당시 김포공항에서 많은 친지들이 전송나온 가운데 보잉727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바니아대학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도쿄ㅡ하와이ㅡ로스엔젤리스ㅡ뉴욕ㅡ필라델피아를 경유하는 긴 여정에 오른 것이다. 난생 처음 나가는 외국이었고 비행기도 처음 타보아 그 때의 흥분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었다. 2. 내 옆에 머리기름이 반지르르한 깔끔한 일본 중년신사가 앉아 있었다. 일본상사의 중역이라고 했다. 날더러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미국 유학가는 길이라고 하니 그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