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때, 파병군을 보내 참전했던 캐나다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극노를 표했다. 30일, 중앙일보에서 단독으로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에린 오툴(Erin O’Toole) 캐나다 보수당 대표는 소셜미디어 트위터로 “나는 한국 전쟁에서 캐나다와 모든 동맹국들이 치른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이어서 그는 트위터에 “캐나다 내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해외 프로파간다에 휘둘리는 단체들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조야 일부는 “한국전쟁에 중국의 개입을 무시하는 것은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라고 주장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반응은 캐나다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단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중국의 6.25 참전을 미화하는 이야기를 퍼트리는 것에 대해서 겨냥한 비판이다. 조선일보에서 취재한 일부 친중 캐나다 매체들은 “70년 전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국(북한)과 함께 싸워 침략을 막아냈고, 주도권을 잡아 승리했다,” “이 위대한 승리를 기록하자” 등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미화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 거짓을 퍼트리는 활동도 확인되었다. 일부 루머는 미국이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한국전쟁을 일개 내전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공청단은 지난 2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한국전쟁은 한 국가의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중국판 페이스북인 웨이보 계정에서 ‘당시 북한과 한국은 서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한 국가의 내전’이며 ‘쌍방간 군사적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라고 주장했다. 비록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한국 및 국제사회가 정의하고 있으나, 중국은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서 남다른 서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중국 당국은 25일,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전에서 “1950, 6월 25일 조선 내전의 발발 후 미국은 병력을 보내 무력 개입을 하고 전면전을 일으켰다”라고 주장하며 북한군의 남한 침략을 부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이날 연설을 통해서 한국전쟁은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라고 주장했다. 모건 오테이거스(Morgan ortagus)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판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트위터(Twitter)를 통해서 한국전쟁은 북한군의 남침이라고 밝히면서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70주년 기념일인 25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은 이날 막을 올린 항미원조 기념전을 보려는 가족 단위와 단체 관람객으로 북적거렸다. 중국은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날의 입장권 8천장은 나흘 전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됐었다. 앞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도 전시관을 미리 찾았었다. 한 관람객에게 왜 전시를 보러왔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인이라면 당연히 와야죠"라는 답이 돌아와 머쓱해졌다. 이 관람객은 기자가 한국 언론 소속인 것을 알고는 바로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위대한 승리를 깊이 새기고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자'는 이름이 붙은 전시회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결정으로 출병할 때부터 전쟁 과정과 휴전까지 5개 부분으로 나뉘었다. 전시관에서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입구의 서언은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중국 민족의 전통이다. 항미원조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의 발발 후 미국은 병력을 보내 무력 개
9월 27일, 한국전쟁 중국 참전자 유해 117구가 중국에 귀국했다. 28일 오전, 중국 당국은 귀환하는 “애국자”들을 위해서 성대한 귀환 행사를 주최하였다. 한국전쟁 참전군인이었던 이한 사양은 귀환 행사에서, “그들은 이름이 없는 순교자들이다. 그들의 공통된 이름은 영웅이다”라며 귀환한 중국 참전군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날 기념의식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고, 생존 참전군인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날 중국 랴오닝 선양 항미 원조 열사능원에 117구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도로 주변 전광판은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와 가정과 나라를 지킨다)라는 문구로 도배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2014년도에 한국에 남아있는 한국전쟁 참전 중국군 유해를 돌려주기로 합의를 했다. 한국은 이번 117구의 유해를 포함해 총 716구의 유해를 귀환했다. 117구의 한국전쟁 중국 참전자들의 유해는 DMZ 비무장지대에서 발굴되었다고 신화(Xinhua) 중국 외신이 보도했다. 다음 달 예정인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일에는 애국주의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주장한 ‘종전선언’ 논의를 하려면 한국을 겨냥해 전진배치된 북한 병력과 무기부터 철수해야 한다는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전면전 태세에 집중하는 북한이 그런 선언에 관심을 가질 리 없는 만큼, 한국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억지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은 남북한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결과이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것인지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Of course ending the Korean War formally would be the very best outcome for all the Korean people. The question is how to do it? Please know that war can only be ended when both sides fully agree to end the conflict. Additionally, both sides must -- must --demonstrate clear and verifiable terminations of po
한국전쟁 중 실종된 뒤 전사 처리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실제로는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후 중국을 거쳐 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오택성 기자입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2년 4월 6일. 미 ‘뉴욕 타임즈’ 신문의 1면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건장한 군인의 사진과 함께 이 군인의 실종 소식이 실렸습니다. 실종된 군인은 바로 ‘제임스 밴 플리트 2세’,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었습니다. 밴 플리트 2세는 한국전에 참전한 아버지를 따라 B-26 전투기 조종사로 지원해 1952년 3월 14일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1948년 6월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밴 플리트 2세는 1949년 10월에 끝난 그리스 내전에 공군으로 이미 한 차례 참전해 또다시 해외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또 다른 전장이었습니다. 한국전 참전 명령을 받은 직후 어머니에게 쓴 편지엔 한국전에 참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편지 중 일부입니다. “이제 바야흐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국인 참전용사의 딸이 올해 가을 신선될 미 국립육군박물관에 17만 5천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본인도 미 육군으로 20년 간 복무했고 지난 15년 간 육군박물관 설립을 위해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올 가을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에 있는 버지니아주 포트 벨보어에 국립육군박물관이 새로 세워집니다. 미군에서 육군은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조직이지만 아직까지 육군과 관련한 국립박물관이 없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미 육군에 20년 간 복무한 뒤 대위로 전역한 모니카 최 씨는 이 박물관 건립에 자신의 돈 17만 5천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또 지난 15년 간 국립육군박물관 설립을 준비하기 위한 자원 봉사자로도 활동했습니다. [녹취: 모니카 최 씨] “그 안에 한국전쟁에 대한 것도 있고 한국전쟁에 대해서 잊어버리면 안되니까, 그 부분에 관심을 두고…” 특히 박물관 내에 한국전쟁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매우 고무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최경진 씨는 대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8240부대 소속이었습니다. 8240부대는 유엔군 산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