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세 유학일기 14] "로버트 실러 교수와의 만남" 문을 여니 웬 금발머리에 미남형의 젊은 교수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름을 얘기하고 브룸필드 교수 소개로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벌써 브룸필드 교수에게 얘기를 들은 듯 반갑게 맞이하면서 자기 이름은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라고 하였다. 나는 실러교수에게 논문지도교수를 맡아줄 수 없겠는지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즉석에서 OK를 하였다. 그리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한국금융시장과 통화정책에 관련된 주제에 대하여 쓰고 싶다고 하였다. 그럼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proposal을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와의 면담은 화요일 오전 11시에 만나 1시간을 잡아 놓겠다고 하였다. 1. 이로써 첫 만남은 간단하게 끝났다. 그와의 1년 반 가까운 매주 회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논문지도교수로서는 나를 처음 지도하게 되었다. 즉 나는 그의 첫 제자가 된 것이다. 그는 나와 나이차가 별로 없어서인지 매우 polite하고 친절하였다. 그리고 성격이 좀 shy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논문쓰는 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매주 회동을 쉬는 일이 없
[이영세 유학일기 13] "서울방문, 논문준비 그리고 어떤 어페어" 드디어 서울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김포에 내려 3년 만에 보는 서울은 건물들이 모두 작아보였다. 그 사이 나의 눈이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아직 학위가 끝나지 않았지만 모친을 비롯한 가족, 친지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 간의 사정들을 얘기했다. 일을 하고 미국경제가 어려워 생활에 압박을 받는다고…….집에서는 일하느라 시간보내지 말고 논문을 빨리 써서 끝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집에서 보조를 더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러겠다고 하고 만날 분들을 더 만나보고 다시 돌아왔다. 1. 그런데 서울 방문 시 만난 분들 중 이런 일도 있었다. 다시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가 유학 첫 1년을 마치고 예비시험도 끝내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5촌 당숙부가 당신이 아는 분 중에 딸이 있는데 인물도 괜찮다고 하니 혹시 관심 있으면 미국서 만나보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5촌당숙부는 50년대 미국유학을 하신 분으로 내가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때 그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며칠 지내면서 시험장에 갈때 직접 바래다 주신 분으로 평소 나를 많이 아껴주시던 분이었다. 2. 내가 연락을 했더니 그 부친이 뉴욕 어느 호텔
[유학일기 12] "격동의 미국, 그리고 나" 코스웤이 끝나갈 무렵 미국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었다.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 석유 값이 배럴 당 2불에서 한꺼번에 8불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석유가격은 전후 근 30년 가까이 2불선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미국인은 물보다 더 흔하게 석유를 소비하면서 그 넓은 미국전역의 하이웨이를 달리며 레저문화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1. 그만큼 OPEC에 의한 석유가격 전격인상은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그 석유도 구하지 못해 주유소마다 차 행렬이 길게 블록을 가득 채우곤 하였다. 연이어 물가가 폭등하였다. 당시 미국 할머니들은 자기들이 어릴 때 1불로 살 수 있는 구매력으로 30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똑 같은 구매력으로 상품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즉 1930년의 물가와 1960년의 물가는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불짜리 그린 백을 들고 식품점에 가면 계산하는 할머니들이 돋보기를 끄집어내어 진짜 달러인지 들여다볼 정도로 가치가 있었고 희귀하였다. 2. 그렇게 안정된 물가가 미국이 60년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비 조달하기 위하여 미연방준비이사회가 돈을 찍어내기 시작
1. 둘째 나에게 찾아온 행운은 학교로부터 일부 학점을 면제를 받은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20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중 8과목을 면제 받은 것이다. 나에게는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2. 사실 유학 오기 전 한국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였다. 당시 미국서 학위한 교수가 있다는 S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펜대학 입학당시 석사과정이수를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 당시우리나라 대학원수준은 미국대학에서 바로 인정할 수준이 되지못했다. 강의는 별로 없고 학생스스로 발표하거나 리포트로 학점을 받던 때였다. 나도 유학가기 전 미국서 공부하고 온 분들의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갔는데 교수들이 바빠서 별로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3. 따라서 과목면제를 받아도 등록금 절약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전공과목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들어야 할 과목이 여전히 많았다. 본래 박사과정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전공과목 두개를 선택하여 전공시험(field examination)을 쳐서 통과하여야만 한다. 나는 전공을 국제경제학과 화폐금융론을 택하였다. 국제경제학은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소국경제(small open economy)이기에 국제경제흐름을
[이영세 유학일기 10] "연구조교를 하다" 예비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주위에서 나를 대하는 시선이 우호적으로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특히 학교당국과 교수들이 도와줄려는 마음의 자세를 읽을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1. 첫째 학교에서 연구조교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펜대학에 자비유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물론 중부의 어느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 지나고 스칼라십을 고려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명문대학인 아이비스쿨의 유펜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펜은 사립이라 학비가 만만치 않았고 당시 사정으로 생활비도 비싸 연구조교를 원하였다. 2. 당시 워튼경제예측연구소장인 클라인박사는 나를 직접 불러 시간당 4불의 임금을 책정해 주었다. 시간당 4불이면 partime job으로서는 괜찮은 것이었다. 즉 주 20시간, 월 80시간 일하면 320달러를 버는데 그돈이면 월 생활이 되는 수준이었다. 73년 당시 일주일 먹거리 장만에 20불정도 들었고 아파트렌트가 월 75불이니까 월 필수 생활비는 155불이고 나머지는 잡비나 레저로 쓸수 있는 액수이었다. 3. 나는 훤칠한 키에 전형적인
"1.절대 안 했다고 잡아 뗀다. 2.한 증거가 나오면, 별 거 아니라 한다. 3.별 거 같으면, ‘너도 비슷하게 안 했냐’며 물고 늘어진다. 4.그것도 안 되면, 꼬리 자르기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13년 10월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범죄자들의 변명 기법’이라는 글을 리트윗해 이같이 올렸다. 당시 이 글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조로남불’, 조국은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는 의미의 ‘조과싸’,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조적조' 등 하루가 멀다하고 신조어가 생겨났다. 최근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이 불거지자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의혹을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에 조 전 장관이 리트윗한 이 글을 또 한 번 대입했다. 1. 절대 안 했다고 잡아뗀다 통일부는 지난 1월 29일 "2018년 이후 남북협력사업으로 북한 지역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례는 없다"며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는 원전이란 단어나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 공식 발표했다. 이후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지난 23일 적폐청산연대가 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무고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국민고발인단을 모집하는 글에 “여비서와 김재련(변호사)이 박원순 시장님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저들의 주장이 무고이자 ‘미투를 가장한 정치공작’임을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라고 주장한 사실이 뉴스1에 보도되었다. 해당 보도에서는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조성필)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 씨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냄새를 맡고 싶다’ ‘몸매 좋다’ ‘사진 보내 달라’ 등의 문자를 보낸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박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즉 정리하자면, 성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문자 보낸 사실과 성추행으로 인해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한 사실을 형사 사건들을 다루는 법원에서 인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국민으로서 범죄에 대해 고발할 권리는 이제는 유효하지 않은 것인가?”가 된다. 특히 성범죄 같은 범죄는 단순히 물리적인 피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이상엽 원장 1. 근래에 대한민국의 ‘애국 태극기 부대’와 미국과 유럽 및 기타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단체‘ 그리고 전 세계에 포진한 자유민주주의의 보호 단체 들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미합중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바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깊은 염원을 짊어진 ’트럼프 체재‘가 계속 유지되느냐, 아니면 ‘바이든’이라는 새로운 정권으로 넘어가느냐 하는 기로에 있는 며칠인 것이다。 2. 최근에 한국의 ‘팬엔 마이크TV’ 산하 ‘사실 연구소’에서 제작한 ‘이승만 대통령의 6.25 전쟁 대처’라는 4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접하게 되어 현 시대와 공감되는 바를 많이 느끼게 되어서 이 글을 적게 되었다。 6-25 전쟁이 잘 요약된 이 동영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에 남침이 시작되었고, 10월 1일 북진시작까지 3개월 간의 숨막히는 상황변화를 기록했고, 이는 요즈음 작년 11월3일 미국대통령 선거결과가 ‘사기선거’로 판명되면서 우여곡절을 겪고, 드디어 2개월 후- 바로2~3일 후면 대통령이 취임하는 그 격동의기간이 2-3개월로 매우 비슷하다. << 동영상 상영 >> https://youtu.be
** 미국 대선 개입과 관련해서 이현승(재미 탈북민, 평해탄TV)와 가진 인터뷰입니다.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을 모두 겪은 특별한 경험에서 대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질문1. 지난 11월 미국대선에서 투표가 조작됬다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이번 미국 선거에서 가장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것은 D사 투표시스템과 외부 세력의 개입입니다. 이 투표 시스템은 외부세력이 소유하고 선거를 조작했다는 정황 증거자료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국은 사실상 선거 통제력을 상실했습니다. 질문2. 선거 데이터가 외국으로 빠져나간 증거들이 있습니까? 예, 데이터가 세르비아, 캐나다, 독일, 바르셀로나로 전송됐습니다.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이 추적하고 분석한데 따르면… (아래에 적힌 IP 주소는 밝히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 D 서버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있는것으로 밝혀졌습니다. [IP 82.117.198.54 (ASN Range: 82.117.192.0/19)] o D 서버 ftp.dominionvoting.com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습니다. [IP 69.172.237.100 (ASN Range: 69.172.236
"한국, 국가자살로 질주하고 있다"... 멈추어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이제는 아예 내놓고 가고 있다... 권순활 전언론인 주장 권순활 (전 언론인) 1.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7개월 정도 지나 한창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2018년 1월 3일 나는 <‘국가 자살’로 치닫는 20세기 기적의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문 정권이 들어선 해인 2017년 11월 펜앤마이크 창간 작업을 시작해 두 달 동안 주말도, 휴일도, 성탄절도 없이 창간멤버인 젊은 기자들과 힘을 모아 이듬해인 1월 2일 펜앤마이크 창간호 콘텐츠들을 내보내고 밤늦게까지 업데이트한 뒤에야 그날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 해서 작성해 창간 다음날인 1월 3일 아침에 게재한 기명칼럼이었다. 2. 돌이켜보면 그때 인적 물적 자원의 현저한 한계 속에서도 제대로 된 새로운 언론매체를 만들기 위해 기자 경험이 극히 짧거나 아니면 전혀 없는 젊은 기자들을 이끌고 두 달 간 연일 무리에 무리를 거듭했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지닌 기존 언론매체와는 비교도 하기 어려운 신생매체라고는 하지만 인적 물적 한계 속에서 창간기사 기획에서부터 기사작성 지도, 기사 출고까지 창간과정의 거의 모든 업무를 혼자서 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