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알아온 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다가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불쑥 했습니다. "지금 나라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저희들이 알게 모르게 일제 교육을 받았던 부모로부터 '그 무엇'을 물려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게 됩니다. 저는 입시로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부모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받았던 그것이 한국의 성장과 저의 인생살이에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주장은 분명히 가설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南沢(minamizawa)이란 필명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분의 글에서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설이나 주장이니까 생각이 다르더라도 열받지 말기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 글쓴이: 南沢(minamizawa) / https://www.facebook.com/Manskitchen 글쓴 날: 03-27(토)-2021 1.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업을 같이 했기에 나쁠수 밖에 없는 부자간 관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세상 물정을 좀 더 알게되어 생
'self-abasement' 자기비하(自己卑下) 안간의 내면에 부정적 요소가 극정적인 것 보다 훨씬 더 많고 큰 모양이다. 성선설 (性善說) 보다 성악설 (性惡說)에 더 비중을 준다는 생각도 된다. 성경의 십계명에서도 그렇다. "~ 하라'라고 하는 계명보다 '~ 하지 말라 (You shall not) 는 것이 2 대 8의 비율로 높다. "~ 하라"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두 개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 중심'으로 이뤄져야 만족한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수도승과 같은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았다. The pilgrims knelt in self-abasement. 순례자들은 자신을 낮추면서 무릎을 꿇었다. 물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약육강식 (弱肉强食)의 새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겠지만 말이다. 자기비하 (自己卑下) = 무능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보인다. Humility and self-abasement are often seen as feminine qualities. 겸손과 자기비하는 종종 여성의 특성으로 보인다. 자기비하나 겸손을 갖지 않은 사람이 행사할 때에는 비굴도 보이지만 많은 것을
[이영세 유학일기 20] 에필로그 1978년 5월 어느 날 내 나이 31세에 논문 최종 심사를 하였다. 디펜스는 사실 형식적이었다. 심사위원은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어렵고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고 한국제도에 관해 자기들이 궁금한 것을 물은 것 같다. 실러교수는 그 전에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나에게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이야 너무나 평범한 이론이지만 당시에는 최신의 이론과 최첨단의 실증기법으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미적분과 확률이론을 활용하여 디폴트 리스크가 있는 불확실성하에 은행의 신용배급이론이라든지 토빈-브레이나드(Tobin-Brainard)일반금융모델은 당시 최신의 이론이고 모델이었다. 또한 통계기법도 2SLS(2단계 최소자승법)을 사용하였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정책효과도 예상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당시에 합리적 기대이론을 실러교수에게서 배우면서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음 그리고 내만큼 그 이론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디펜스가 쉽게 끝나고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감하였다. 1. 나는 유학기간 서둘러 학위만 하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미국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고 공부를 제대로
'ovation' 열렬한 박수 미국에 오래 사는 한인들이 하는 말 가운데, "한국어도 잘 못하고 영어도 시원치 않은 것이 슬프다" 이다. 한국어의 맞춤법이 많이 바뀌어서 그렇고 영어는 '남의 나라 언어'이기 때문에 잘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어느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라고 해야 하는 것을 '되겠읍니다.'라고 어느 방문록에써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그 대통령의 학창시절에는 '습니다'가 아니라 '읍니다'가 옳은 맞춤법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 국민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나는 미국에 오래 살아도 비교적 한국어 맞춤법을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한국어 사전도 새로 사면서..)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우뢰 와 '우레' 가운데 어는 것이 맞느냐.. " 대부분의 교포들은 우뢰라고 답한다. '우레 같은 박수'라고 하지 않는 교포들이 많다. I have never receive a thunderous ovation in my life. 나는 일생동안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적이 없어요. but a standing ovation. 그러나 기립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답니다. (오늘의 주제 '열렬한 박수' 도 '열열'이라고
[이영세 유학일기 19] "기억 한자락" 유학일기를 마무리하려니 기억한자락이 떠나지 않는다. 코스웍을 할 때다. 빈곤체험하기 위해 슬럼과 같은 아파트에 렌트를 얻어 산 적이 있었다. 학교 기숙사가 한달 150불할 때 이 아파트는 45불이었으니 얼마나 후진 아파트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 아파트에는 1층에 백인노인이 한분 계셨고 2층에는 백인할머니 두분이 살고 있었다. 2층에 방 하나가 더 있어서 그기에 입주한 것이다. 슬럼아파트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한 말이다. 고기굽기 위해 다 낡아빠진 오븐을 열면 바퀴벌레가 수북히 있다가 도망간다. 침대도 낡아 잠을 자고 나면 허리가 아파온다. 더 놀라운 것은 자고 있는데 얼굴이 간지러워 손으로 만지면 바퀴벌레가 잡히는 것이다. 여기에 백인 노인분들이 연금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큰 일이 쇼핑하는 것이다. 차도 없어 카트를 끌고 일주일 먹을거리를 쇼핑해오는 모습은 혹시나 다칠가 넘어질까 조심조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1. 1층에 사는 백인노인과 한번은 대화를 같이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보기에 90가까이 되어 보였다. 오로지 죽을 날만 기다리듯 항상 누어 지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도
[이영세 유학일기 18] 에피소드3 "말레이지아에서온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내 클래스메이트 얘기를 해야겠다. 입학 당초 35명이 입학했었다고 모두에 얘기를 했다. 그러나 학위는 15명 정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많은 경우 대학 교수로 갔고 연구소, 정부, 은행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와 제일 먼저 친구가 된 오사무 니시무라라는 일본 학생은 일본 도시사대학 교수로 가서 몇년전 그 대학에서 은퇴를 하였다. 미국의 제임스 오어(James Orr)라는 학생은 상무성에 취직했다가 나중 뉴욕연방은행으로 옮겼다. 그는 같은 클래스 메이트인 홍콩 여학생과 결혼하였다. 1. 그는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 자기 차로 필라델피아를 구경시켜주었다. 그 아버지는 노동자출신이었는데 아들에게 투자하여 성공한 셈이었다. 어느 날 나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시카고를 여행했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얘기했다. 사실 미국노동자는 평생 벌수 있는 수입이 정해져 있어 10년후, 20년후 여행계획을 미리 짜서 적금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평생 해외는 나가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미국의 중류생활은 안정적이었다라는 말도 된다. 태국에서 온 여학생은 세계은행
'ingenuity' 독창성, 기발한 재주 '천재는 99 %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영어로는 'Genius is 99% hard work and 1% inspiration,' 이다. 그런데 그 문장의 음율을 살려서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라고도 한다. inspiration 과 perspiration (땀흘리기)의 어미가 ration 으로 음률을 맞췄다 옳은 명언이기는 하지만 쉽게 수긍할 수도 없다. 모짜르트는 잠들긴 전에 작곡할 것을 간략하게 생각하고 잠 자는 동안에 (꿈 가운데) 전곡을 작곡하며 깨어서 악보로 옮길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단다. 아무리 99 퍼센트 땀을 흘려도 평범한 사람에는 남의 일에 불과하다. 며칠전 미국이 Perseverance 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안착시켜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그 우주선에 Ingenuity (기발한 재주)라는 helicopter 를 실었단다. helicoper 를 화성에 가져 가려는 생각은 그야말로 기발한 발상이다. 위에서 모짜르트의 천재성 얘기를 했지만 이런 작곡가도 있다. He fir
[이영세 유학일기 17] 에피소드 2 펜대학 재학 중에 유학생으로 같은 일가 종친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당시 야당대표의 아들로 국제관계론 석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 일가는 본이 전의로써 이씨 중에서는 비교적 드물어 사회에서 만나면 반가운 그런 성씨이다. 따라서 같은 일가이기 때문에 그와도 자연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1. 한번은 그의 부친이 뉴욕에 오신다고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나도 같은 일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만나보고 싶었다. 그분은 자유당시절부터 국회의원을 하고 민주당시절에는 국회국방위원장을 지낸 거물정치인 L 씨였다. 미국 출장 중 마침 5.16이 나는 바람에 정치정화법에 묶여 귀국을 못하고 타의로 망명생활을 하였다. 나중에 풀려 귀국하여 당시 40대기수론의 한 축을 이루어 바람도 일으켰다. 야당대표를 하면서 중도통합론을 내세워 외교에는 여야가 없다며 정부에 협조적이었다. 당시 유신시절이라 그 때문에 오해도 받고 있었다. 2. 뉴욕에 그분이 묵고 있다는 호텔에 도착하니 다섯 명의 야당 국회의원하고 같이 왔었다. 일행 중에는 나중 노태우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N서울대교수도 speech writer의 자격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수인사를
[이영세 유학일기 16] 에피소드 1 유학일기를 마치기 전에 두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1. 첫째는 우리 클래스에 프랑스에서 온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 사람답게 품위가 있고 교양이 있어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인기가 있었다. 첫1년이 지나고 보이지 않아 예비시험에 실패한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 뒤에 캠퍼스에 다시 돌아 왔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하고 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놀랍게도 통일교를 공부하고 왔다고 하였다. 자기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삶에 회의와 방황을 많이 했는데 통일교를 만나 모든 삶의 회의가 사라졌고 확신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즉 그녀는 무니(Mooney)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무니란 문선명이 창시한 통일교의 교도를 미국사람들이 부르는 별칭이다. 당시 미국 청년들은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반전운동과 히피가 그 대표적인 현상이었다. 2. 그래서 그 정신적 공백기에 통일교가 한때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아이비 대학에 파고들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을 때였다. 필라에도 문선명씨가 와서 설교를 하였고 학교 캠퍼스에도 무니들이 통일교를 전도하였다. 나에게도 접근을 하여 호기심에 한번 그들이 살고 있는
[이영세 유학일기 15] "논문을 마무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론적인 분석은 비교적 쉽게 끝났다. 당시 제도권에서 금리가 미리 결정된 상태에서 각 경제주체들 즉 도산위험이 있는 투자가(기업)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은행,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위험을 무릅쓰는 사채업자들이 정부가 통화공급을 확대하면 어떤 behavior를 할지 분석하였다. 문제는 실증분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데이터는 경제개발 이전의 것은 의미가 없고 그 이후는 시계열이 짧아 통계적 유의성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리고 고도성장을 하고 있을 때라 대부분의 변수는 다같이 증가하고 있어 서로의 관계가 이론적으로는 부(負)의 관계로 나와야 하는데 실제는 정(正)의 관계로 나오는 수가 많다. 예를 들면 이자율과 투자와는 이론적으로 부의 관계인데 실제는 정의 관계가 나온다. 이자율이 올라가도 투자는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경제주체의 행태방정식을 측정하여도 모델은 예상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모델이 안정적이지를 않아 정책변수를 넣어도 기대한 해(解)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실증분석과정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실러교수는 여러 도움을 주었다. 1. 나는 논문쓰는 대부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