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전쟁은 끝났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과거 집권기(1996∼2001년) '공포 정치'로 악명 높았던 탈레반은 개방적 정부 구성과 인권 존중을 약속하며 달라진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대혼란을 우려한 서방국 대사관 인력은 앞다퉈 출국에 나섰다.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는 밀려든 아프간 국민이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이에 1975년 남베트남 패망 때 빚어진 '사이공 최후의 탈출' 장면이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 탈레반 승리 선언…대통령궁엔 탈레반 깃발
아프간 정권 붕괴 후 카불을 수중에 넣은 탈레반은 이날 대변인을 통해 "아프간에서 전쟁은 끝났다"며 통치 방식과 정권 형태가 곧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지난 5월 아프간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만이자, 탈레반이 이달 6일부터 주요 거점 도시들을 장악한 지 불과 10일만이다.
탈레반 대원들은 아프간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탈레반기도 게양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탈레반은 성명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하며 "아프간 국민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라"고 덧붙였다.
향후 정부도 개방적으로 구성할 것이라며 여성 권리도 존중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면서 이날 밤 곳곳에서 폭발음과 총격 소리도 들렸다고 현지 방송이 전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16일 "상황이 평화로우며 전국 어디에서도 충돌이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또 이날 카불에서 개인 호신용 무기를 가지고 있던 민간인들로부터 무기를 수거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 미국 등 서방 공관원들 속속 탈출…러 "대피계획 없다"
미국 등 주요 서방국가 대사관들은 자국 인력 대피에 나섰다.
미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16일 "모든 대사관 인력이 현재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있다"고 밝혔다.
현지 미 대사관에 걸려 있던 성조기도 내려졌다. 미 대사관 성조기 하강은 대사관 직원 대피의 마지막 단계다.
이에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CBS에 "미 대사관이 대피하는 것을 보니 매우 끔찍하다"며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 순간"이라고 말했다.
미 대사관의 치욕적 대피가 1975년 남베트남 패망 직전 사이공 탈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도 속속 탈출에 나섰다.
영국 여권을 소지한 300명이 전날 아프간을 먼저 떠났으며, 앞으로 24∼36시간 안에 1천500명이 추가로 출국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도 자국민과 현지 채용 아프간인 출국 작전을 개시했다.
반면 러시아는 탈레반이 외국 외교공관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했다면서 대피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신장 위구르자치구를 통해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중국은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 카불 주민 공포 속으로…"공항선 미군 발포로 사망"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 정권을 재장악하자 카불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카불 시내를 빠져나가는 차량 행렬로 도로 곳곳은 꽉 막혔다.
특히 카불 국제공항에는 날이 밝기도 전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비행기에 태워달라며 활주로까지 장악하자 공항 운영 자체가 마비됐다.
민항기 운항은 중단됐고 유나이티드항공 등 국제 항공사들은 아프간 영공을 피하기 위한 항로 조정에 나섰다.
미군이 시민 해산을 위해 발포까지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미군의 발포로 공항에서 아프간인 여러 명이 사망했다고 보안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공항에서 최소 5명이 숨졌는데, 미군 발포 때문인지 (인파에) 깔려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목격자 증언을 전했다.
소셜미디어(SNS)와 뉴스채널에서는 이륙하는 비행기의 바퀴에 매달렸던 시민 2명이 상공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미군은 카불 공항의 혼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철수 관련 항공기 운항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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