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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우군 없는 오세훈, 민간주도 주택공급 단독드리블 가능할까

시의회·구청장·정부·국회 '첩첩산중'…가시밭길 예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성난 부동산 민심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오 시장은 선거전 내내 서울 시내 전역을 골골이 누비며 깨알 같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시의회, 구청장, 정부, 국회가 모두 여당 천하인 상황에서 '단기필마(單騎匹馬)'인 오 시장이 1년여 남은 임기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겹겹의 허들을 넘어 규제 완화를 이룬다고 해도 이는 '양날의 검'이다. 공급 확대를 위해선 규제를 풀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 집값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비싼 집에 사는 시민들은 오른 세금에 흥분했지만, 주거 사다리가 끊긴 서민·청년층은 오른 집값에 분노했다. 자칫 개발 기대감으로 서울 집값이 다시 급등할 경우 오 시장에게 불어닥칠 역풍은 만만찮을 수 있다.

 

◇ 오세훈 표 규제 완화에 개발 기대감 고조

 

오 시장이 표방한 주택 정책은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대의에서는 정부의 2·4 대책과 궤를 같이하지만, 방법론은 완전히 다르다.

 

오 시장은 현 정부가 금기시하는 민간주도의 재개발·재건축을 전면에 내건 '스피드 주택공급'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스피드는 민간에서 나온다는 것이 오 시장의 지론이다.

 

오 시장은 향후 5년간 36만호의 주택을 공급기로 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만5천호를 민간 개발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35층 룰 및 용적률 제한,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재개발·재건축 관련 규제를 완화 또는 해제하겠다는 것이다.

 

또 강남·북 균형발전 프로젝트로 비강남권 지하철과 국철 구간 일부를 지하화해 지역 거점으로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도봉구 창동 차량기지에 돔구장을 만들고, 그 밑에 스타필드 같은 대형 쇼핑공간과 바이오메디컬 단지를 짓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청 일대, 강남, 여의도에 이어 제4의 도심을 동북권에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오세훈 시장의 등판으로 오랫동안 재개발·재건축 규제에 억눌려 있던 압구정동, 개포동, 잠원동, 잠실동, 여의도, 목동, 상계동 등의 오래된 아파트단지들은 개발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일부 단지는 최근 가격이 급등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첫째 주(5일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0.05% 올라 지난주와 상승률이 같았으나 송파구(0.10%)와 노원구(0.09%), 강남·서초구(0.08%), 양천구(0.07%)는 상승률 1∼5위에 랭크됐다. 이들 5곳은 모두 재건축 '호재'가 있는 지역이다.

 

◇ 시의회·정부·국회 견제 넘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오 시장에게 '표심' 외엔 우군이 없다는 점에서 정책 추진이 곳곳에서 막힐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당장 시의원 109명 중 101명, 서울 시내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 구의회 의원 369명 중 219명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입법권을 쥔 국회도 여당 천하다. 오 시장은 홀로 천하를 좌우하는 무협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다. 현실 정치 지형 속에서, 법과 제도의 틀을 지켜가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

 

예컨대 35층 층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완화 등은 시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파트 재건축, 분양가 상한제, 초과이익환수제, 지하철이나 국철 구간 일부 지하화 등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정부가 허용하거나 관련 법령을 바꿔야 하며, 때로는 구청장의 협조도 필요하다. 서울시의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주요 공무원들이 모두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정책에 익숙한 인사들이라는 점도 오 시장에게는 큰 벽이다.

 

정부는 공공개발 위주의 주택 정책을 바꿀 생각이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8일 열린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투기수요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 불공정 거래 근절 등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택공급은 후보지 선정, 지구 지정, 심의·인허가 등 일련의 행정 절차상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오 시장을 겨냥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오 시장의 주택 공급 확대책이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긴 하지만 혼자서 1년여 임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 '양날의 칼' 규제 완화…집값 급등 땐 역풍

 

이 때문에 오 시장이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좌충우돌하고 정부가 이에 제동을 걸 경우 생산적 논의는 없이 갈등만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 공급에서 민간의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오 시장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선 시의회나 구청장 등 여권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조화롭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라면서 "오히려 갈등만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도 2·4 대책에서 제시한 서울 도심 32만호 공급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서울시장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정부와 오 시장 간 주고받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서울 도심에 32만호를 공급하려면 어차피 일부 규제를 풀어야 하는 데다 공공 재건축·재개발은 서울시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적정선의 '딜'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주택 공급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면서 "앞으로 이러한 상호협력이 더욱더 긴밀하고 견고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첩첩산중을 넘어 각종 규제를 푼다고 해도 '지뢰밭'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국 집값의 풍향이 달린 서울 집값이 다시 요동칠 경우 뒷감당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발 기대감만으로도 이미 주요 재건축 단지의 주택 가격이 불안한 상황에서 오 시장이 구상하는 '한강 르네상스'가 현실화할 경우 단기적인 집값 급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집값 안정을 바라고 오 시장을 찍은 서민층이나 20∼30대 젊은층이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다.

 

고종완 원장은 "부작용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 없이 재건축 등을 밀어붙이다가 강남 집값에 다시 불이 붙는다면 안정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종현 기자 kimjh@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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