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는 것이 삶이다. 백년 천년 살 것처럼 노력하더라도 결국 때가 되면 누구든지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그런 죽음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는 젊은 날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할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워싱턴 특파원을 하다가 아주 젊은 날에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건이다. 가끔 "어떻게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또 다른 한 사람은 지난해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넥슨 창업주 김정주 회장이다. 후배는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이고, 김정주 회장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이다. 며칠전 <조선일보>에는 김정주 전 회장을 알고 지내던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가 공개한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2019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출처: 조선일보 2. 아버지가 이름이 잘 알려진 변호사였기 때문에 서울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기회를 제공하였을 것이고, 아마도 어린 시절 배운 바이올린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본인이 뛰어난 머리와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업계서 넥슨이란 대단한 기업을 창업하는데 성공하였을 것이다. 재능과
"스스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사람은 엉뚱한 선택을 하기 쉬운 존재" 주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소식이 신문에 오르곤 한다.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는 현상이 되고 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수록 이런 현상이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10대, 20대, 30대 처럼 더 살아야 할 연령층의 젊은이들 가운데 극단적인 선택이 늘어나는 일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1.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이처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활동을 모두 '지적'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본능과 감각을 넘어서 지적 활동으로 자신을 볼 수 있으면 삶에서 오는 긴장감과 부담감을 조금을 들 수 있지만 모두에게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땅의 역사만 보더라도 지금처럼 전쟁이 없고, 먹을꺼리를 확보하는데 어렵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라는 긴 흐름에서 현재를 볼 수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중심적인 존재는 현재의 자기만 주목하기 쉽기 때문이다. 2.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