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문제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살아가는 일이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면, 개개인이 삶의 여러 국면에서 갖게 되는 문제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따라서 외부로부터타인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웃들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 최근에 이웃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는 일이 편리해졌지만, 이런 저런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전체 통계가 아니라 주변에서 겪는 경험치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런데 공식적인 통계에서를 살펴봐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1월에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NMHC)이 발간한 <정신건강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들의 극단적 선택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여기에 더해 정신질환자가 치료 받고 퇴원한 이후에도 피해야 할 선택을 행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일반인구의 4배 이상, 10만명당 6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2. 가슴 아픈 이야기는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내린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다. 주변 사람들은 변고가 발
"저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외신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미국 대도시의 노숙자 문제이다. 지난 4월 18일 로스엔젤레스의 신임 카렌 배스 시장은 '새로운 LA'모토라는 시정연설에서 2023-2024 회계연도 130억달러 가운데서 무려 노숙자 예산으로 13억 달러를 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노숙자 가운데 40%가 로스엔젤레스 일원에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연 13억달러라는 거액을 투입한다고 해서 노숙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1. 이런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최근들어 생활고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만만치 않을 정도도 많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명 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가 23.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치 11.1명을 넘어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해당 통계에서 20명이 넘는 국가는 리투아니아 20.3명(2020년 기준)이 유일하다. 이같은 상황은 현재로서는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앞으로도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
"문제 해결로서의 삶은 노년의 끝자락까지 함께" 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젊은 날 함께 했던 사람들을 관찰자 입장에서 새롭게 보게 된다. 그들에게서 관찰하게 되는 것은 젊은 날과 차원이 다를 뿐 또 다른 해결과제다. "삶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명언처럼 젊은 날은 젊은 날대로, 그리고 나이들어가는 날은 그대로 그 연배에 걸맞는 문제 앞에 서게 된다. 1.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찾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어떤 연령층에 속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일을 할 때나, 소일거리를 할 때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시간의 일부를 투입하고 있는 활동이나 행위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찾거나 부여할 수 있다면, 여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결과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삶에 자주 끼여들기 마련인 무료함이나, 지루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스스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사람은 엉뚱한 선택을 하기 쉬운 존재" 주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소식이 신문에 오르곤 한다. 특정 연령층에 국한되지 않는 현상이 되고 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수록 이런 현상이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10대, 20대, 30대 처럼 더 살아야 할 연령층의 젊은이들 가운데 극단적인 선택이 늘어나는 일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1.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이처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활동을 모두 '지적'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본능과 감각을 넘어서 지적 활동으로 자신을 볼 수 있으면 삶에서 오는 긴장감과 부담감을 조금을 들 수 있지만 모두에게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땅의 역사만 보더라도 지금처럼 전쟁이 없고, 먹을꺼리를 확보하는데 어렵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라는 긴 흐름에서 현재를 볼 수 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중심적인 존재는 현재의 자기만 주목하기 쉽기 때문이다. 2.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