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 평생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가운데서도 유독 기억의 한 곳을 차지하는 인물이 있게 마련이다. 6월 12일, 이상일 회장(일진그룹 창업자)의 부음을 갑자기 접하고서 글로서라도 우선 이별의 기회를 갖기를 원한다.
1.
이상일 회장은 소비재 상품을 만드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진그룹의 성장과 이상일 회장의 삶의 경로를 들여다 볼 귀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이 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국적 베어링의 아버지"
"국적 베어링의 선각자"
"휠베어링 국산화의 주역"
이상일 회장(일진그룹): 1938~2023
2.
현대기아자동차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하면서 부품 국산화로 기틀을 닦은 기업들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가 일진글로벌, 일진베어링, 베어링아트, (주)일진 등으로 구성된 일진그룹을 들 수 있다.
봉제사업, 컨데이터 부품 사업, 자동차 샤시 사업, 휠베어링 국산화 사업, 산업용 베어링 사업 등으로 업역을 확장해서 성장해 온 기업이다. 특히 기술 수준이나 정밀도 면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어보이던 휠베어링(자동차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바퀴의 회전을 원활하기 하는 베어링) 국산화는 이상일 회장의 일생에 금자탑과 같은 것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 냈기 때문에 그 공적을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친 법이 없을 정도다.
3.
미국인들이 유별나게 좋아하는 GM, FOED, 크라이슬러(현 스텔란티스) 등의 주력 상품 가운데 하나인 픽업트럭 10대 가운데 6대가 일진의 휠베어링을 장착하고 있다. 또한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이고 벤츠, BMW, 마세라티, 테슬라 등 세계적인 명품 자동차들이 일진의 휠베어링을 장착하고 달리고 있다.
오늘날 현대기아자동차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우뚝 선것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안전부품으로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휠베어링을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일진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 또한 놀라움 그 자체이다.
4.
이상일 회장과의 인연에서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처음 시작한 봉제업에서 실패를 맛보고 물러난 소회를 그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사업은 정말 망해선 안되겠더군요." 젊은 날 그의 다짐처럼 이후에 샤시사업, 베어링 사업 등을 통털어서 실패라고 손에 꼽을 수 있는 사업이 드물 정도이다. 부침이 많은 사업 세계에서 그는 사업을 지켰고, 가족을 지켰고,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상일 회장의 일생을 통털어서 가장 힘든 시기가 가세가 크게 기울었던 고려대 상학과 시절이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평생동안 그와 함께 했던 낙관론이 젊은 날부터 함께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세상 탓을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한번 정도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나름의 사람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일 회장의 최고의 강점을 한가지만 들라고 하면 나는 임직원들을 업무에 깊이 몰입시키고 집중시키는 그의 특별한 용병술을 들고 싶다. 입사 당시만 하더라도 평범하게 보이는 구성원들을 세월과 함께 단단히 단련시켜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인재들의 대상에는 한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에 맞추어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평생 동안 발휘한 기업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업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고객을 대하는 태도,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 강한 책임감과 겸손함 등은 그와 인연을 가졌던 누구에게나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더라도, 자주 떠오르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이상일 회장일 것이다.
5.
더 오랜 세월동안 활동했으면 하는 짙은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허망함과 아쉬움은 어떻게 말과 글로 담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삶이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을 말이다. 갑작스런 부음을 접하고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이제 그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으실 수 있게 되셨구나"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래도 너무 아쉬운 것은 다음 달(7월)이 이상일 회장이 사업 세계에 뛰어든지 50년이 되는 시점이다. 치열하게 뛰어오면서 이룬 반세기의 공적을 결산하지 못하고 떠난 점을 개인적으로 너무나 애석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참으로 열심이 사셨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상일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3년 6월 13일
공병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