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이 다시 변동 폭을 키우며 오르고 있어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전세난의 진원지는 '강남'이다. 최근 재건축 이주 수요로 촉발된 강남발 전세난이 인근 지역으로 번지면서 '전세난 도미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 '진정→상승' 분위기 바뀐 서울 전세…진원지는 서초
6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한 달 동안 0.08∼0.11% 수준으로 오르며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7월 말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한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급등해 올해 초까지 0.10%대 상승률을 이어가며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도권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이 담긴 2·4 대책이 나온 뒤 진정되기 시작해 2월에 0.07%, 3월 0.03%, 4월 0.02% 수준까지 상승 폭을 줄였다.
5월 0.03∼0.04% 수준에서 관리되던 전셋값은 5월 마지막 주 0.05%로 상승 폭을 다시 키우더니 6월 들어서는 0.08%, 0.11%, 0.09%. 0.10%로 변동 폭을 키우며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의 서울 전셋값 상승은 서초구가 견인하고 있다.
서초구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주간 누적 기준으로 6월 한 달간 1.65% 올라 서울 평균(0.38%)의 4배를 웃돌았다.
2위인 동작구(0.67%)와 비교해도 2.5배 높은 수준이고, 송파구(0.63%), 강동구(0.50%), 강북구(0.44%) 등 상승률 상위 지역과 3배 안팎으로 격차가 난다.
서초구 전셋값은 2·4 대책 직전까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꺾이지 않다가 2·4 대책 직후 0.11%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4월 0.00%까지 상승 폭을 줄였다.
그러던 것이 5월 1∼3주 0.01∼0.07% 사이에서 꿈틀대기 시작해 5월 3∼4주 0.16%, 0.26%로 튀어 올랐고, 6월 1∼4주에는 0.39%, 0.56%, 0.36%, 0.34%로 급등해 2015년 3월 이후 6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 반포 재건축 이주 수요로 "전세는 부르는 게 값"…반전세·월세 늘어
서초구 전셋값 급등은 반포동 재건축 단지의 이주 영향이 크다.
지난달 반포 1·2·4주구 2천210가구가 재건축 이주를 시작하면서 전세 물량도 함께 줄고, 이주 수요가 인근으로 옮겨가면서 전세가 품귀를 빚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초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전날 기준 2천950건으로, 2개월 전(3천54건)보다 3.5% 줄었다. 이 가운데 반포 1∼4주구가 있는 반포동은 같은 기간 17.9%(918→754건) 줄어 서초구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우면동(-17.6%)과 잠원동(-5.8%) 등도 매물이 줄었다.
반포 3주구 1천490가구 역시 재건축을 위해 곧 이주할 예정이어서 전세난은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반포동 T 공인 대표는 "재건축 이주 수요가 주변 단지로 옮겨가면서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미리 이사 준비를 했겠지만, 막상 또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주변 전셋값이 더 오르고 들썩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반포 1·2·4주구 바로 옆에 있는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전용 84.95㎡가 지난달 10일 보증금 23억원(34층)에 신고가로 전세 계약을 맺었고, 중소형인 전용 59.97㎡도 지난달 19일 보증금 15억5천만원(14층) 신고가 거래가 이뤄지며 가격이 치솟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래미안퍼스티지 역시 84.93㎡ 전세가 5월에 이미 보증금 21억원(18층)으로 신고가를 찍었고, 인근 반포힐스테이트 대형 155.95㎡는 보증금 30억원(23층)에 역대 최고 가격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인근 D 공인 대표는 "이쪽은 아이들 학교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계획이 없는 집들도 많다"며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이라 지금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전셋값이 크게 뛰면서 반전세·월세도 늘고 있다.
전세 물건이 줄어든 두 달 동안 서초구의 월세 물건은 오히려 6.7%(2천637건→2천814건) 증가했다.
래미안퍼스티지의 경우 지난달 전체 단지에서 거래된 임대차 계약 7건 중 5건이 월세를 낀 반전세 형태였다. 순수 전세는 2건에 불과했고, 이 중 1건은 재계약, 1건은 신고가 거래(135.92㎡·33억원)였다.
D 공인 대표는 "전셋값이 기본 억 단위로 오르니 오른 전셋값을 월세로 돌려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인근에 집을 구하려 해도 여력이 안되는 집들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전세난 도미노' 우려…동작·성동구도 전세 품귀·가격 상승
'반포동 전세난'은 서초구를 넘어 인접한 동작·강남·성동구 등의 전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동작구의 아파트 전세는 2개월 전과 비교하면 36.5%(791건→503건) 감소했다. 상도동(-78.9%), 흑석동(-19.8%), 사당동(-8.2%) 등에서 물건이 줄었다.
동작구 흑석동 H 공인 관계자는 "반포주공1단지 세입자들이 흑석동에 전세를 구하러 오는 경우가 있다. 재건축 직전의 낡은 아파트라 강남에서도 저렴한 전세로 살 수 있었는데, 이제 그 보증금으로는 강남에서 전세를 구하기 어려우니 이쪽까지 밀려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동구 옥수동 D 공인 대표도 "반포 재건축 이주 수요가 이쪽까지 밀려오면서 전세는 계속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으로 눌러앉는 세입자들이 많아져 전세 물량이 잠긴 상황에서 수요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K 공인 대표는 "작년 하반기 이후 전세가 진정된 적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지금까지도 계속 물건이 귀하고 값은 내리지 않는 상황인데, 반포 재건축 이주 얘기까지 나오니 주변 지역에도 심리적인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옥수동 옥수하이츠 84.86㎡는 지난달 4일 보증금 8억6천만원(1층)에 신고가로 전세 계약이 이뤄졌고, 동작구 사당동 사당자이 84.46㎡는 5월 말 보증금 6억5천만원(15층)에 역시 신고가로 거래되는 등 전셋값도 상승세다.
압구정동에서도 현대3차 82.5㎡가 지난달 24일 보증금 10억원(6층)에 전세 계약서를 써 역대 최고가격에 거래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반포에서 시작된 전세 불안이 인근의 동작, 용산, 성동, 강남, 송파구 등으로 번지는 모양새지만, 국지적인 불안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서울 전체적으로 임대차 임대차 3법 시행과 입주 물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전세 유통 물량이 줄어든 상황과 만나 더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전세 품귀 속에 전세는 줄고 월세는 늘어나는 구조적인 전세난이 심화할 우려도 여전하고, 전세난이 매매시장을 자극하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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