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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류 반감' 이면엔 뿌리 깊은 중화사상

BTS 이어 한복·동요·손흥민까지…'중국기원설' 억지
전문가들 "중화사상·애국주의·소황제 시대 맞물린듯"

 

"방탄소년단(BTS), 한복, 동요, 아리랑 그리고 손흥민까지 걸고 넘어지다니…."

 

최근 중국 일각에서 한류에 대한 반감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한국의 대표 문화가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했다며 '중국 기원설'을 내세우자 양국 네티즌간 공방이 뜨겁다.

 

중국은 지난 2016년 한중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가 가열되자 비공식적인 보복 조치로 '한한령'(한류 제한령·限韓令)을 통해 한류에 빗장을 걸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K팝 스타의 중국 본토 공연이 제한되고 한류 스타의 중국 활동도 막혀있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방한설이 나오는 등 한중 관계 개선이 타진되는 가운데 중국 일각에서 BTS를 비난하고 한복을 중국 조선족 복식이므로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양국 간 원활한 교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중국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왜 갑자기 이런 주장을 거세게 하는 걸까.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중화사상을 중심으로 미중 갈등, 애국주의, '소황제'(小皇帝·응석받이로 자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가 맞물리면 터져 나온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적지 않다.

 

20여 년간 중국 생활을 해온 한 대학 교수는 "중국인들에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뿌리 깊은 중화사상이 알게 모르게 내재해있다"면서 "청나라 아편 전쟁과 일제 침략 등을 거치면서 실추됐던 자존심이 이제는 미국에 맞먹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중화사상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선두에는 중국의 중장년 또는 노년층이 아니라 10~20대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 문화혁명 등 고난의 시절을 겪은 세대가 아니며 중국 경제 발전의 풍요 속에 소황제로 군림하며 남 부러울 것 없이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는 미국과도 맞서 중국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주변국들에 대한 우월감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와 정부도 최근 몇 년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면서 중국의 부상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현안에 대해 일부 세력이 중국이 최고라는 애국주의를 내세우며 나설 경우 군중이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불매 운동 등 강력한 보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BTS 사태의 경우 BTS 입장을 지지했던 한 중국 네티즌은 비난 세례에 자신의 계정이 정지되고 공식으로 사과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베이징의 조선족 출신 교육 전문가는 "요즘 10대, 20대들은 중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고 실제 풍족한 생활을 해서 중화사상, 애국주의에 가장 민감하다"면서 "이들의 과한 열정에 어떤 경우는 중국 정부마저 당혹해하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한류는 경계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어떤 면에서는 인정하기 싫은 측면도 있는 셈이다.

 

BTS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수상하며 한국전쟁 70주년을 언급하자 일부 중국인이 반발하며 불매 운동을 일으켰다. 심지어 중국 택배업체들이 BTS 관련 제품의 운송을 중단하겠다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BTS 논란이 일자 자국의 공식 입장과는 관계없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중국의 일부 교육 현장에서 BTS 관련 내용이 검열되는 등 후폭풍은 여전하다.

 

반면, K팝 아이돌 출신 중국인 연예인들은 중국의 6·25전쟁 참전을 의미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와 관련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올렸다.

 

 

우리나라의 전통 복장인 한복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한 중국 게임회사가 캐릭터에 옷을 입히는 스타일링 게임에 한복 아이템을 출시했다가 중국 네티즌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돌연 한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한복 아이템은 중국 쪽에도 함께 출시됐는데, 중국 네티즌이 "중국 명나라 의상이다", "한복은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의상이니 중국옷이다" 등 한복이 중국 문화라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자 이 중국 업체는 돌연 "국가의 존엄을 지키겠다"며 한복 아이템을 삭제하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한국판 서비스까지 종료했다.

 

펑파이(澎湃) 등 중국 매체들은 조선 시대 기록에 '조선의 의복과 문물은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언급이 있다면서 비뚤어진 민족주의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반달' 또한 최근 중국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 뿌리가 중국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이 곡은 작곡가 윤극영이 1924년 작곡한 동요로 1950년대 조선족 김정평과 윤극영의 아버지 김철남이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한 뒤 중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리랑 또한 한국의 신청에 따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있으나 중국은 그 유래가 중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축구 스타 손흥민(토트넘)의 조상이 중국인이었다는 일부 중국 네티즌의 엉뚱한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론 고대 중국에서부터 많은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또한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는 점에서 중국 일각에서 한국 문화와 관련해 무조건 '메이드 인 차이나'를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견해가 많다.

 

베이징의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미중 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중화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지나친 애국주의가 중국을 휩쓸어 중국 무대에서 해외 연예인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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