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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9] "박사 예비시험 (preliminary examination)에 합격하다"

경쟁사회의 살벌함이 느껴지는 순간,
평균 반이 잘려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어

[이영세 유학일기 9] "박사 예비시험 (preliminary examination)에 합격하다"

 

이윽고 첫 해 첫 학기가 지나가고 둘째 해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닉슨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워터게이트사건이 불거져 시끄러웠다. 캠퍼스에서는 미국학생들이 닉슨은 사기군(crook)이라며 아주 싫어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데 한 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이번 학기 지나면 박사예비시험 (preliminary examination)을 치러야 되기 때문이었다.

 

1.

예비시험은 수업한 두 학기 네 과목에 대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즉 거시경제학, 미시경제학, 성장이론, 후생경제학 등 경제학의 핵심이론에 대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여기서 평균 반이 잘려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따라서 2학기도 첫 학기와 다름없이 긴장하면서 수업에 임하였다. 2학기 성장이론 첫 시간이었다. 웬 새파란 젊은 친구가 교단에 올라왔다. 나는 조교이려니 생각했다. 생김새가 아인슈타인을 방불케 하는 곱슬머리에 천재 형으로 생겼다. 키는 나지막하고 머리는 크고 약간의 사팔뜨기같이 보였다. 낡은 가방을 들고 올라와 조교인줄 알았는데 그는 자기 이름이 스티브 로스(Steve Ross)라고 소개하곤 바로 강의를 시작하지 않는가.

 

2.

2학기가 되니 귀가 어느 정도 뚫려 있었고 그의 강의가 너무나 명쾌하여 잘 이해되었다. 사실 명강의란 이런 강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90분 강의에서 그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여도 한자 틀림없이 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논리 정연하였다.

 

어려운 수식을 풀어 나가는데 단 한 번도 노트를 보지 않고 설명하였다. 나는 그의 강의에 매료되었고 그의 시간이 오기만 기다려지고 흥분되었다. 나의 지적 호기심은 완전 충족되었고 이제야 유학 오기를 참으로 잘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당시 27세로 펜대학 생기고 최연소 정교수가 된 엘리트 중 엘리트 교수였던 것이다. 반면에 후생경제학은 깐깐해 보이는 교수가 가르쳤다. 나는 유학 오기 전에 후생경제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정도는 들었으나 그 내용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고 오히려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개념이해하기가 어려웠다.

 

3.

이러나저러나 학기말 예비시험은 치렀고 단번에 합격하였다. 소문대로 반이 떨어져나갔다. 그전에 보이던 남미출신, 흑인학생들이 보이지 않았고 태국에서 온 두 명 중 한명이 떨어져 나갔다. 한국학생도 당초 세 명이 있었는데 한명이 떨어져 나갔다.

 

4.

경쟁사회의 살벌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보았다. 학교 건물 안 승강기에서 불합격한 학생이 교수에게 '하이'라고 인사를 하니 그 교수는 인사를 받지 않고 얼굴을 외면해 버렸다. 바로 그저께만 해도 스승-제자관계로 질문하면 친절하게 답해주던 그 교수가 아니었던가? 참으로 미국은 냉혹한 사회라는 것을 느꼈고 거세게 돌아가는 기계에 각자는 작은 부품으로 그 기계에 속도를 못 맞추면 튕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5.

교수들도 강의하랴 논문 쓰랴 학생 지도하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어 교수들 중에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였다. 실제 거시경제를 가르친 베르만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실력도 있었으나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5월에 예비시험에 떨어지면 9월에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지만 구제되는 비율이 높지 않고 그때도 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일단 한숨을 돌리고 전공과목 코스웤에 집중을 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