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군홧발로 '미얀마의 봄'을 짓밟은 지 두 달이 넘었다.
이 기간 540명 이상의 무고한 목숨이 군경의 총구 앞에 스러졌다.
미얀마 군사정권이 쿠데타 이후 언론에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두 달여간 미얀마 시민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시 시위대 및 교민들과의 전화 통화 또는 SNS 메신저 대화를 통해 간접 취재를 했다.
SNS에 쉴새 없이 올라오는 핏빛 가득한 영상과 사진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국민 보호라는 근본 임무를 망각한 군경의 만행에는 제삼자임에도 분노가 일었다.
총탄에 자녀나 부모를 잃고 오열하는 이들은 기자 또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우리 아들, 딸의 부모이기에 목이 메고 눈앞이 흐려졌다.
차마 글로 묘사하기도 힘든 총격 피해자들의 처참한 사진과 영상에는 충격과 공포감이 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무엇보다 마음에 깊이 박힌 것은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의 총구에 맞서 보여준 '용기'다.
다른 국민들에 비해 미얀마 사람들이 온순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거리 시위에 나갔다 군경 총격에 목숨을 잃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개인의 안위를 거부한 그 결기에 숙연해진 때가 적지 않았다.
현지 매체 및 SNS을 통해 전해진 이들의 그 결연함은 동료 시민들에게 군부에 맞서 싸울 용기를 북돋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었다.
지난달 초 만달레이에서 거리 시위에 참여했다 총탄에 맞아 숨진 19세 소녀 치애 신.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시위대가 빗발치는 최루탄과 실탄에 멈칫하자 그는 "우리는 단결했지? 우리는 도망가지 않아"라고 외치며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현장 사진엔 그가 동료들에게 총탄을 피하라며 앉으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 직후 그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망할 당시 입고 있던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는 시위대에 승리를 향한 힘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됐다.
의사인 띠하 툰 툰은 지난달 27일 시위에 나가기 전 유서를 남겼다.
가족은 그가 총에 맞아 숨지자 페이스북에 유서를 올렸고, 다른 시민들은 이를 영어로 번역해 전파했다.
그 유서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그는 "엄마, 만약 내가 죽었다면 자랑스러워하세요. 오래 슬퍼하지는 마세요"라고 적었다.
아내에게는 "당신이 내 삶의 최고였다. 당신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동료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계속 싸워라.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간호학과 학생인 띤자 헤인(20)은 지난달 28일 중부 몽유와의 거리에서 총격 부상자를 돌보던 중이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고 꽃다운 삶을 마감했다.
그는 숨지기에 앞서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돌아올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는 길을 가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를 용서해주기를…"
동부 샨주에서 지난달 19일 총탄에 스러진 예 투 아웅은 평소 시위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군홧발 아래에 살게 될 것이다"
사망 당시에도 그는 동료 시위대를 대피시키고, 부상한 여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현장으로 되돌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에는 25살의 친 민 뚜가 거리 시위에 나갔다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둘째를 임신 중이던 아내가 시위 참여를 만류했지만, "오늘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지 못할 거야. 여보, 나를 용서해"라며 끝내 거리로 나갔다고 한다.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할 용기를 보여준 미얀마인들의 모습도 기억에 선명하다.
지난달 초 SNS에는 한 수녀가 군경 앞에 무릎을 꿇고 무언가 애원하는 모습이 올라왔다.
미얀마 북부 미치나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원 소속인 안 누 따웅(45) 수녀로, 앞서 2월 28일에도 군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누 따웅 수녀는 당시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 정녕 쏘겠다면 나를 대신 쏘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종교인이자,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하려는 용기를 보여줬다고 입을 모았다.
114명 넘는 시민이 미얀마 군경의 총탄에 스러진 지난달 27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열린 국제미인대회.
무대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총에 맞은 시신과 울부짖는 한 여성 그리고 총기를 난사하는 군경과 이에 맞선 거리시위대가 담긴 영상이 흘러나온다.
어느 미인대회에서도 본 적이 없었을 듯한 장면이었다.
미스 미얀마 한 레이는 "이 무대에 서는 동안, 조국 미얀마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아파하고 분노한 한 청년이었다.
한 레이는 안전에 대한 우려로 당분간 태국에 머물거라고 한다. 난민 지위 신청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상황을 그는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쿠데타 약 한 달 뒤 전세계 대표들이 모인 유엔 총회에서 서슬 퍼런 군정에 맞서 쿠데타 즉각 종식을 촉구하고, 저항의 상징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인 초 모 툰 유엔 대사의 행동도 미얀마인의 용기를 드러내 보인 사건이었다.
기자는 쿠데타 초기 서면 인터뷰 및 전화 통화로 연락을 취했던 미얀마 현지의 A씨에게 며칠 전 SNS로 안부를 물었다.
그는 시위에 매일 참여하던 열성적인 청년이었다.
A씨는 "집 가까운 곳의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가 없는 날에는 기부하거나 SNS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 한 명이 구급대 자원봉사자로 양곤 시내 남다곤의 시위 현장에 갔는데, 이틀이 됐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 친구는 앞선 기사에 등장했던 A씨와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한 친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에게 시위에 나가더라도 안전에 유의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A씨의 경우처럼 가족을, 친구를, 동료 시위대를 그리고 미얀마 국민을 서로 걱정하는 마음, 이것이 미얀마인들이 무시무시한 총구 앞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원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군부는 국제사회의 호소·경고·압박에 귀 막고 있다. 그래서 불행히도 앞으로 더 많은 피가 뿌려질 가능성이 크다.
구조적 한계 때문에 유엔은 무기력하다. 이를 잘 아는 그들은 더 날뛸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국민들은 540명이 넘는 동료들의 피를 보며 더 단결하겠다고, 그래서 끝내 승리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들 모두가 짓밟힌 '미얀마의 봄'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봄의 혁명'의 진짜 영웅들이다.
전세계 시민들이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지지와 응원은 무엇일까. 그들의 용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용기가 힘을 잃지 않도록.
김남권 특파원 sout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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