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한국인 무슬림이 6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먼 이국땅의 종교로만 여겨졌던 이슬람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라는 통념 등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평화를 추구하면서 선한 삶을 실천하고자 애쓴다고 항변합니다. 전 세계 18억 인구가 믿는 이슬람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우리 곁에 다가온 무슬림과의 소통을 위해 4건의 기획 기사를 마련해 송고합니다.]
지난 16일 오후 12시 40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에 '쌀라'(예배) 시간을 알리는 노래 '아잔'이 울려 퍼졌다. 성원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에 합동 예배가 열린다. 무슬림(이슬람교 신도)들은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사원 등에서 쌀라를 해야 한다.
성전 안에는 마스크를 쓴 신도 80여 명이 2m씩 거리 두기를 하고 앉았고, 예배 시간 30분 전에 자리가 모두 찼다. 다른 신도들은 성전 주변에 각자 준비한 양탄자를 깔고 바닥에 엎드리며 기도를 했다. 오후 1시가 되자 성전 밖 마당까지 신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배에 참석한 신도들의 연령대는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대학교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은 신도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국인 신도도 여럿 보였다. 합동 예배가 평일 오후라 한국인은 성원 주변에 사는 장년층 위주로 20여 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한다. 예배를 인도한 한국인 이주화 이맘(이슬람 교단의 지도자)은 아랍어, 영어, 한국어 순으로 설교를 했다. 예배는 30분가량 진행됐다.
서울중앙성원 관계자는 "오늘 예배에는 400여 명이 참석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800여 명가량 모였다"며 "합동 예배 외의 기도 시간에는 50여 명이 참석하는데, 이 중 한국인이 5∼1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한국인 여신도 정 모(30) 씨는 대학 시절 외국인 무슬림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이슬람교를 접하고 무슬림이 됐다. 정 씨는 사원에 갈 때가 아니면 이슬람 여성이 머리에 쓰는 히잡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정 씨는 "율법에 어긋나는 건 알지만, 히잡을 쓰고 다니면 불편한 시선과 차별을 받게 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 무슬림 6만 명 시대를 맞았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국내의 한국인 무슬림 수는 2018년 기준 6만 명으로, 5년 동안 5천 명가량 늘었다. 전국에 이슬람사원은 16개, 작은 규모의 성원인 '무쌀라'는 80여 개에 이른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관계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합치면 우리나라의 이슬람교도는 2018년 기준 약 26만 명"이라며 "한국인 무슬림의 원조는 1970∼19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중동 지역으로 가서 이슬람교에 입교한 사람들이며, 이후에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일하다가, 외국서 살다가…다양한 경로로 이슬람교 받아들여
한국인들은 어떤 계기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일까. 취재 결과 이들은 국내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만나게 된 교인들과 교류하며 이슬람교를 접하거나, 아니면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서 생활하다가 입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을 따라 천주교 신자가 됐던 최 모 씨는 무슬림 직원들이 있던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슬람교를 접하게 됐다. 최 씨와 함께 일하는 무슬림들은 하루 5번씩 예배실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고, 업무를 마친 뒤에는 술자리 등을 갖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종교 규율을 그대로 따르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최 씨는 이슬람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기독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고 한다.
2007년 최 씨가 무슬림으로 개종했을 때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했다. '이상한 종교', '사이비 종교'라는 이유에서였다. 최씨가 의지를 꺾지 않자 "히잡만 쓰지 않으면 안 되겠냐"는 반응도 보였다.
개종을 반대하던 부모님은 최 씨가 무슬림이 된 뒤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할랄(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 음식만 먹어야 하는 최씨를 배려해 식단을 짜기도 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최 씨는 한국에서 할랄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무슬림이어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일은 없다고 한다.
최씨는 "무슬림도 종교를 가진 사람일 뿐이고, 보통 이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인터넷 등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문성조(41) 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모태신앙 무슬림이다. 문씨의 아버지는 약사 출신으로 아랍어를 전공한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한국대사관에서 문화부 공보관으로 일했다. 한국인 무슬림 1세대로, 서울중앙성원에서 최초의 한국인 이맘으로 추대된 고(故) 문세주 씨이다.
문 씨는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종교적인 문제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놀림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무슬림이라고 밝히면 주변에서 '한국인 무슬림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어요. 한국 사회가 이슬람 문화권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유연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던 2010년 튀니지로 파견됐을 때 만났던 튀니지 여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등 5개국어를 구사하는 문씨의 아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회사에서 번역과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문 씨는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고 짧은 치마도 입으면서 자유롭게 생활한다"며 "우리나라는 이슬람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있어 아내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전했다.
◇ 'K코란'이 뜬다…외국서 인기 끄는 한국인 '무슬림 셀럽' 등장
20∼30대 한국인 무슬림 중에는 외국 무슬림에게 인기를 끄는 셀럽(유명인)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송보라 씨는 팔로워 수가 20만 명을 넘는 소셜미디어 스타다. 다양한 모양의 히잡으로 자유로운 스타일을 연출하고, 한복, 선글라스, 원피스 등에 히잡을 매칭하며 무슬림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송보라 씨의 팬클럽도 만들어졌다. 그의 사진에는 "당신의 히잡을 사랑해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히잡 스타일이 좋아요" 등 다양한 국적의 팬들이 남긴 댓글이 수십에서 수백개씩 달린다. 하지만 송씨는 무슬림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 등 무슬림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받아요. 한국에서 무슬림인 것이 알려지면 시도 때도 없이 공격당할 것을 감수해야 해요."
인천평화성원에서 활동하는 박동신 이맘의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가 13만2천 명에 달한다. 페이스북 계정은 팔로워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이슬람교평화회 대표이기도 한 박 씨는 2009년 이슬람교에 입교했다. 박씨는 테러 반대 운동과 평화적 이슬람교 정착을 위한 지원·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박씨는 "구독자 중 한국인은 10% 정도 차지한다"며 "외국에서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다. K팝이 유행하는 것처럼 'K코란'이라고 해서 한국인이 직접 코란을 낭송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악성 댓글에 시달려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평화적 이슬람교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인도네시아 무슬림 아리핀 무아즈(24) 씨는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과 동남아 등에서도 한류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한국에 무슬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연예인처럼 좋아한다"고 전했다.
◇ 대학에는 '무슬림 동아리'…'할랄 식당'도 곳곳에 생겨
국내에서 무슬림이 늘면서 일부 대학에는 이슬람교 동아리도 생겨났다.
서울대 무슬림 학생회는 금요일마다 모여 '주므아'(정기 합동 예배)를 한다. 무슬림 학생회 관계자는 "170여 명의 회원 중에는 한국인들도 있다"며 "학교 식당에서 할랄 음식을 제공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중단됐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 무슬림을 많이 봤는데 외국인 무슬림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이슬람교 동아리는 2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1명은 비(非)무슬림 한국인이라고 한다. 동아리 회장 무하메드 우사마 씨는 "무슬림이 아니어도 이슬람교에 관심이 있으면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기도 모임을 하고, 일요일에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 스터디를 한다. 비무슬림 한국인 학생들에게 이슬람 문화를 소개하고 교류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우사마씨는 "지난 행사에는 비무슬림 한국인 8명이 참여해 이슬람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공유했다"며 "동아리 회원들은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학은 교내에 '할랄 식당'도 생겼다.
한양대가 2013년 처음으로 할랄 식당을 만들었고, 이후 세종대, 이화여대, 경희대 등이 할랄 식당이나 할랄 메뉴 등을 잇달아 도입했다. 카이스트에는 할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생겼다. 서울대는 2018년부터 학생 식당에서 할랄 메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수정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공동연구원은 "여러 대학이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이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한국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이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어 코란의 판매량도 늘고 있다. 한국어 코란 완역본을 처음으로 출간한 출판사 '명문당' 관계자는 "판매량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해 한 해 동안 628부가 팔렸고, 올해 들어서는 8월 중순까지 400부 가까이 팔렸다"고 전했다.
◇ "신앙생활에도 자율 필요" vs "규율 엄격하게 따라야"…세대 간 갈등도
한국인 무슬림들은 상당수가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번 시간에 맞춰 기도해야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기도하는 무슬림도 많다. 여성의 경우 자신의 개성에 맞게 히잡을 쓰기도 한다.
이런 성향은 젊은 층일수록 두드러진다.
대학원생 배 모(27) 씨는 중학생 때 필리핀에 살면서 무슬림이 됐다. 그는 학업 때문에 하루 다섯번 드리는 예배를 오후 9∼10시 사이에 몰아서 한다. 집 근처의 무쌀라를 방문해 기도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혼자 한다. 배 씨는 "젊은 사람들은 율법에 크게 얽매이지 않아 한국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게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1970∼1980년대에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권을 형성하는 중동 지역에서 일하며 이슬람교를 접하게 된 중노년층은 이런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젊은 시절 중동에서 일하며 이슬람교에 입교했다는 자영업자 차 모 씨는 "젊은이들은 코란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며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고 멋을 내거나, 예배 시간을 철저히 지키지 않아 어른들에게 '율법을 제대로 지키라'고 잔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엄격한 이슬람 문화권이 아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잔소리를 들어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한다.
문성조 씨는 "한국인 무슬림은 60대 이상 신도와 20∼30대 젊은 층 간 세대 차이가 있다"며 "중노년층은 코란의 규율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쁘고 멋지게 꾸미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젊은 층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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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10/20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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