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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19] "기억 한자락"

[이영세 유학일기 19] "기억 한자락"

 

유학일기를 마무리하려니 기억한자락이 떠나지 않는다. 코스웍을 할 때다. 빈곤체험하기 위해 슬럼과 같은 아파트에 렌트를 얻어 산 적이 있었다. 학교 기숙사가 한달 150불할 때 이 아파트는 45불이었으니 얼마나 후진 아파트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 아파트에는 1층에 백인노인이 한분 계셨고 2층에는 백인할머니 두분이 살고 있었다. 2층에 방 하나가 더 있어서 그기에 입주한 것이다. 슬럼아파트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한 말이다. 고기굽기 위해 다 낡아빠진 오븐을 열면 바퀴벌레가 수북히 있다가 도망간다. 침대도 낡아 잠을 자고 나면 허리가 아파온다. 더 놀라운 것은 자고 있는데 얼굴이 간지러워 손으로 만지면 바퀴벌레가 잡히는 것이다. 여기에 백인 노인분들이 연금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큰 일이 쇼핑하는 것이다. 차도 없어 카트를 끌고 일주일 먹을거리를 쇼핑해오는 모습은 혹시나 다칠가 넘어질까 조심조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1.

1층에 사는 백인노인과 한번은 대화를 같이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보기에 90가까이 되어 보였다. 오로지 죽을 날만 기다리듯 항상 누어 지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만약 아들이 찾아오면 자기는 아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하면서 침대밑에서 권총을 꺼집어 내보여주는 것이다. 아들과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나 이렇게 버려진 백인노인의 말년이 너무나 비참하고 외로워 보였다. 사실 당시 미국에는 이런 버려진 노인들이 많았다. 공원벤치에 홀로 우두커니 햇볕을 쪼이면서 하루종일 앉아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풍경이었다. 우리는 종종 영어연습을 하기 위해 그들 노인에게 다가가 말이라도 걸면 그분들은 우리를 붙들고 끝없이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속에 그분들의 진한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2.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남의 일로 보았다.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못살아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면서 노인들을 예우하고 복지가 없어도 가족들이 돌봐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요즈음 종종 버려진 가족, 버려진 노인들의 얘기를 신문지상에서 보게되면 그때 유학시절 쓸쓸한 미국백인노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