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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15] "논문을 마무리하다"

[이영세 유학일기 15] "논문을 마무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론적인 분석은 비교적 쉽게 끝났다. 당시 제도권에서 금리가 미리 결정된 상태에서 각 경제주체들 즉 도산위험이 있는 투자가(기업)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은행,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위험을 무릅쓰는 사채업자들이 정부가 통화공급을 확대하면 어떤 behavior를 할지 분석하였다. 문제는 실증분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데이터는 경제개발 이전의 것은 의미가 없고 그 이후는 시계열이 짧아 통계적 유의성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리고 고도성장을 하고 있을 때라 대부분의 변수는 다같이 증가하고 있어 서로의 관계가 이론적으로는 부(負)의 관계로 나와야 하는데 실제는 정(正)의 관계로 나오는 수가 많다. 예를 들면 이자율과 투자와는 이론적으로 부의 관계인데 실제는 정의 관계가 나온다. 이자율이 올라가도 투자는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경제주체의 행태방정식을 측정하여도 모델은 예상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모델이 안정적이지를 않아 정책변수를 넣어도 기대한 해(解)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실증분석과정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실러교수는 여러 도움을 주었다.

 

1.

나는 논문쓰는 대부분의 기간에 낮에는 주로 학교에서 컴퓨터작업을 하거나 관련 자료를 찾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쓰기에 시간을 할애하였다. 도서관에서 논문작성을 주로 하였는데 마감시간이 되면 도서관에서 나와 학교기숙사 1층에 있는 맥주집에 들려 생맥주 한 잔을 하는 것이 큰 낙이었다. 그리고 방에 올라가서 라면을 끓여먹고는 다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심야에 작업을 할 때는 주로 포터블 턴테이블을 틀어 음악을 들으면서 하였다. 당시 내가 좋아 했던 음악은 드볼작의 첼로협주곡이었고 장현의 미련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은 좋아했다. 유학 가기 전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아카이녹음기에 녹음하여 수백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외 베토벤의 곡은 거의 모두를 좋아 했고 차이콮스키, 브람스, 쇼팡을 좋아했다. 유학가서 첫 1년은 사이먼앤 가펑글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과 그 듀엣의 노래를 늘 들으면서 공부하였다. 이렇게 밤새 음악을 들으면서 논문쓰기에 몰두하면 어느듯 저 멀리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이 되곤 하였다. 나는 그제야 곤하나 뿌듯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누이곤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하였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2.

나는 주위에서 늘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으나 그렇다고 늘 공부에 집중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중2때 집에 가정교사가 계셔 검정시험을 치르자고 하셔서 무지하게 강행군을 한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한 시작이었다. 그때 처음 반에서 1등이란 것을 하였고 검정시험도 합격하였다. 그 이후 늘 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중3, 고2,3때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20대1의 경쟁을 뚫고 소기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 이후 공부는 그저 취미로 하였는데 유학가서 첫1년을 죽자사자 공부를 하였고 다음 논문을 쓸 때 이렇게 집중한 것이다.

 

3.

그러나 늘상 논문만 쓴 것은 아니었다. 종종 주말에는 싱글들과 같이 댄스파티도 하였고 학부학생들을 데리고 와 음식을 해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그들도 객지에 와서 외롭고 힘든 가운데 공부를 하고 있어 일종의 동병상린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논문은 거의 완성이 되었고 내가 이제 정든 캠퍼스와 필라델피아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