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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14] "로버트 실러 교수와의 만남"

[이영세 유학일기 14] "로버트 실러 교수와의 만남"

 

문을 여니 웬 금발머리에 미남형의 젊은 교수가 앉아 있었다. 나는 이름을 얘기하고 브룸필드 교수 소개로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벌써 브룸필드 교수에게 얘기를 들은 듯 반갑게 맞이하면서 자기 이름은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라고 하였다. 나는 실러교수에게 논문지도교수를 맡아줄 수 없겠는지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즉석에서 OK를 하였다. 그리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한국금융시장과 통화정책에 관련된 주제에 대하여 쓰고 싶다고 하였다. 그럼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proposal을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와의 면담은 화요일 오전 11시에 만나 1시간을 잡아 놓겠다고 하였다.

 

1.

이로써 첫 만남은 간단하게 끝났다. 그와의 1년 반 가까운 매주 회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논문지도교수로서는 나를 처음 지도하게 되었다. 즉 나는 그의 첫 제자가 된 것이다. 그는 나와 나이차가 별로 없어서인지 매우 polite하고 친절하였다. 그리고 성격이 좀 shy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논문쓰는 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매주 회동을 쉬는 일이 없이 성실하게 논문지도를 해 주었다는 점이다.

 

2.

당시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수출과 중화학을 지원해주는 산업 정도로 여겨지고 있을 때였다. 거의 모든 것이 지시금융, 관치금융으로 엄격한 정부규제에 의해 움직였다. 정책 산업에 대해서는 저리의 차등금리가 적용되었으나 일반 자금수요자에게는 높은 이자의 제도권금리가 적용되었다. 그나마 이러한 자금도 구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즉 자금수요가 항상 자금공급보다 초과되는 일종의 불균형시장이어서 신용배급(credit rationing)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다보니 사금융이 발달하게 되었다. 사금융은 제도권금융에서 초과 수요된 자금수요를 제도권금리보다 더 높은 시장금리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제도권금융과 시장금융간의 이원화(dichotomize)된 시장에서 통화정책의 효과를 보고 싶은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불균형시장의 모델을 만들어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함으로써 통화정책이 사채시장 이자율, 대출수요, GDP, 물가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논문제목을 "불확실성하의 상업대출시장의 불균형모형: 한국의 경우" (A Disequilium Model of the Commercial Loan Market under Uncertainty: the Case of Korea)라고 정하였다. 그래서 논문의 목적, 문제의식, 접근방식 그리고 기대효과 등을 적어 실러교수에게 제출하였다.

 

3.

실러교수는 내가 제출한 프로포잘을 line by line 꼼꼼히 읽고 코멘트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working relation은 논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즉 일주일 동안 열심히 쓴 논문을 실러교수가 읽고 고쳐주고 문제제기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등 마치 자기와 co-work을 하듯이 단어 하나까지 수식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토하여 주었다. 사실 그렇게 논문지도를 받기란 쉽지 않다. 유명교수일수록 논문 전 과정에서 세 번 만나고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즉 proposal낼 때 한 번, 중간 발표할 때 한번, 그리고 마지막 통과 시 한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4.

실러교수는 당시 MIT에서 학위를 하고 미시간대학에 교수로 있다가 펜 대학으로 왔다. 펜 대학에서 화폐금융론을 가르쳤는데 당시 유행하던 합리적 기대이론(rational expectation theory)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내가 학위를 하고 난 뒤 80년대 예일대로 옮겨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내가 1996년 산업연구원 워싱턴지원장으로 근무할 때 예일대를 방문하여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실러교수는 미국 땅값을 zip code별로 전망하는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였다. 사실 그가 개발한 Cass-Shiller index는 아직도 주택지수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5.

그리고 내가 대구사이버대 총장을 하고 있을 때 한국에 오셨다. 그는 예일대 동창회에 부탁하여 나를 수소문하여 만나보고 싶다고 하여 예일 출신들과 같이 만나 서울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경주에서 둘만의 회동을 또 가졌었다. 그 때 나는 실러선생에게 대학총장을 맡아 경영을 하느라 전공을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초대 대학총장을 하면 학교 총장실에 초상화가 제일 먼저 걸리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위로 겸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얼굴이 상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내심 생각이 없지 않은 것으로 짐작하였다.

 

6.

그는 이미 90년대 초 그의 유명한 저서 "비합리적 호황"(Irrational Exuberance)를 통하여 미국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예측하였던 것이다. 그 후 2013년 실러교수는 행동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실러교수는 그 부인이 심리학을 전공한 분이었다. 그래서 심리가 경제적 결정과정에서 미치는 역할에 대해서 자기 부인과 토의를 많이 하고 그것이 행동경제학 이론 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에게 실토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의 성실성이 그를 노벨경제학상까지 받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