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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13] "서울방문, 논문준비 그리고 어떤 어페어"

[이영세 유학일기 13] "서울방문, 논문준비 그리고 어떤 어페어"

 

드디어 서울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김포에 내려 3년 만에 보는 서울은 건물들이 모두 작아보였다. 그 사이 나의 눈이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아직 학위가 끝나지 않았지만 모친을 비롯한 가족, 친지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 간의 사정들을 얘기했다. 일을 하고 미국경제가 어려워 생활에 압박을 받는다고…….집에서는 일하느라 시간보내지 말고 논문을 빨리 써서 끝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집에서 보조를 더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러겠다고 하고 만날 분들을 더 만나보고 다시 돌아왔다.

 

1.

그런데 서울 방문 시 만난 분들 중 이런 일도 있었다. 다시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가 유학 첫 1년을 마치고 예비시험도 끝내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5촌 당숙부가 당신이 아는 분 중에 딸이 있는데 인물도 괜찮다고 하니 혹시 관심 있으면 미국서 만나보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5촌당숙부는 50년대 미국유학을 하신 분으로 내가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때 그집에서 기거를 하면서 며칠 지내면서 시험장에 갈때 직접 바래다 주신 분으로 평소 나를 많이 아껴주시던 분이었다.

 

2.

내가 연락을 했더니 그 부친이 뉴욕 어느 호텔로 오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약속한 호텔로 찾아 갔다. 몇 호실로 오라고 해서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어떤 묘령의 아가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가…….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S대학원에 다닐 때 카페테리아에서 종종 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녀는 당시 최고 권력의 영애와 늘 단둘이서 식사를 하던 모습이 눈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 부친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 부친은 상공부 고위관료를 지내고 당시 모 대기업에 CEO로 계셨다. 맥주를 하면서 나의 장래희망을 묻고 덕담을 나누었다. 외국서 외로울 테니 연락하며 지내라 하면서 자기 딸은 뉴욕 근방의 모 대학에 전자공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전번을 주었다.

 

3.

돌아와서 그녀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바쁜 가운데 전화를 몇 번 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시외전화는 유학생이 자주 걸기에는 부담이 되는 비용이었다. 나도 코스웤을 하느라 바쁘고 하여 자연스레 소식이 끊겼다. 그러나 그녀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코스웤을 끝내고 한국에 다녀오기 직전 그녀가 다닌다는 학교를 직접 찾아 갔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부친을 내가 서울에 들렸을 때 다시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다시 뉴욕서 재회를 하였다. 모친은 사주궁합을 보니 천생연분이라고 하였다. 나도 이것이야 말로 인연이라 생각하였다.

 

4.

그러나... 그러나... "나 같으면 학위하고 난 뒤에 결혼하겠다. 그 때 되면 더 좋은 혼처가 나올 텐데" 작은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가.…….아버지가 내 3세 때 돌아가신 후 우리 집안을 이끌고 사실상의 아버지 역할을 해왔고 또 내가 유학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계시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작은 아버지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나는 순간 매우 낙담하였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 학위 끝나면 작은 아버지의 말씀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간이란, 나란 그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지난 몇 년간 속으로 그렇게 그리워했고 마음에 두고 있은 사람이었는데 작은 아버지의 단 한 말씀에 마음이 흐트러지다니…….

 

5.
그 이후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몇 개 윌 후 그 오빠가 유펜에 왔다. 명분은 학교에 있는 그의 친구 보러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의 상황과 의향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마침 학교기숙사에 내가 있는 투베드룸에 방이 하나 비어 있어 그기에 일주일을 같이 지냈다. 그 오빠도 신사적이고 사람이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끝내 아무 언질을 주지 않고 그는 떠났다. 이것이 그 녀와의 마지막이었고 나는 그렇게 순수성을 잃어갔다.

 

6.

그런 와중에 논문 준비에 착수하였다. 우선 논문주제를 무엇으로 잡을까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논문지도교수를 누구로 정할까 고민이 되었다. 나는 국제금융을 가르친 브룸필드 교수를 찾아가 의논을 하였다. 그 분은 나에게 펜 대학에 최근에 온 젊고 유망한 교수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 분을 논문지도교수로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 분을 추천해 주셨다. 나는 그 분을 오피스로 찾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