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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영세 유학일기 10] "연구조교를 하다"

[이영세 유학일기 10] "연구조교를 하다"

 

예비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주위에서 나를 대하는 시선이 우호적으로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특히 학교당국과 교수들이 도와줄려는 마음의

자세를 읽을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1.

첫째 학교에서 연구조교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펜대학에 자비유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물론 중부의 어느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 지나고 스칼라십을 고려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명문대학인 아이비스쿨의 유펜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펜은 사립이라 학비가 만만치 않았고 당시 사정으로 생활비도 비싸 연구조교를 원하였다.

 

2.

당시 워튼경제예측연구소장인 클라인박사는 나를 직접 불러 시간당 4불의 임금을 책정해

주었다. 시간당 4불이면 partime job으로서는 괜찮은 것이었다. 즉 주 20시간, 월 80시간 일하면

320달러를 버는데 그돈이면 월 생활이 되는 수준이었다. 73년 당시 일주일 먹거리 장만에 20불정도 들었고 아파트렌트가 월 75불이니까 월 필수 생활비는 155불이고 나머지는 잡비나 레저로

쓸수 있는 액수이었다.

 

3.

나는 훤칠한 키에 전형적인 미국남부신사풍의 교수에게 배정되었다. 그는 엑슨(Exxon)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석유가격을 전망하는 것이었다. 그는 에너지가격결정모델을 컴퓨터로 구축했는데 그것을 설명해주고 에러체크를 해달라는 것이다. 당시 컴퓨터는 pc가 없었고 경제과 건물에 메인 컴퓨터 한대만 있을 따름인데 모든 교수 조교 대학원생이 같이 쓰는 컴이었다.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방식이 수백장의 카드에 구멍을 내는 키펀치를 하여 카드로 하여금 읽히는 방식이다. 컴이 계산은 수초밖에 안 걸리지만 그것을 프린트하는데는 대기자가 많아 수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초저녁에 리딩을 시키면 밤늦게 프린트되어 나온다. 그런데 데이터가 잘못 입력되거나 프로그램이 잘못되면 에러가 나온다. 수시간 기다린 것이 도로묵된다.

 

4.

그러나 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즉 당시 컴퓨터 랭귀지가 포트란이었는데 내가 포트란을 한국서 며칠 배우다 온 것 뿐이어서 에러체크를 어떻게 하는 줄 몰랐다. 교수에게 얘기하니 배워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당시 어디에 가서 배워야 할지도 막막하여 한달 가까이 낑낑대다가 두손 들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더 일찍 아니면 첨부터 할 수 없다고 했어야 하는데 첨 만난 교수와 관계만 나빠지고 말았다.

 

5.

학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프로젝트를 연결시켜 주었다. 자동차수요예측을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것은 컴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데이터 분석을 하는 모형이었다. 담당책임자는 이집트사람인데 워크홀릭같았다. 해프닝은 이집트 연구책임자 두 사람이 나를 서로 데리고 가려고 나 보는 앞에서 싸우는 것이었다. 나는 선택권이 없어 보고만 있었는데 양보한 이집트 연구책임자가 더 점잖아 보여 그와 일하고 싶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팔려간 신부가 되었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