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스스로 신속하게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는 집단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어떤 사회나 민족은 개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관성이 강한 편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한 사회의 진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잦다.
1.
어떤 민족에 민족성 혹은 민족의 원형이란 것이 있는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지만, 유럽의 경우 독일 민족(사회)과 이탈리아 민족(사회)을 비교할 때면, 어떤 집단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더라도 각각의 고유한 특장점은 물론이고 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용수철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억제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순식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2.
2007년에 출판된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 안병직 이영훈 대담>(기파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안병직: 일정시대에는 아버지가 학교에 쌀을 지고 가시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아버지가 쌀을 지게에 지고 가서 담임 선생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때에는 미처 절이 들지 않아서, 나를 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고맙게만 느꼈어요. 일정시대에도 부정부패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선생들이 학부모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을 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교육기관까지도 부정부패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영훈: 일정 떼에 논산군에서 면서기를 했던 분의 이야기입니다. 일정 때만 해도 상급자가 전근을 가면, 테이블에 둘러서서 과자와 사이다를 놓고 송별식을 했답니다. 물론, 새로운 상급자의 취임 축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는 기생집에서 벌어지게 요리를 차려놓고 이 취임 축하연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밑바닥ㄷ에 알게 모르게 흐르고 있던 문화가 억눌려 있다가 해방과 함께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안병직: (...) 문화라는 것은 생명력이 끈질겨서 수십 년 동안 억눌린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의 의식과 생활 저변에 오래도록 흐르고 있었던 겁니다. 식민지 지배가 걷히자 그것이 다시 솟아 오른 겁니다."(17~18쪽)
3.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 혹은 한국 민족에게 고유한 뿌리깊은 원형은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그것은 오랜 기간동안 억제될 수 있지만, 적절한 여건만 마련되면 마치 용수철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된다. 나는 근래에 우리 사회가 겪었고, 겪고 있는 선거 공정성 문제, 의정충돌 문제, 공짜 정책의 남발 문제, 사법체제의 문제 등을 볼 때면 민족의 원형 혹은 사회의 원형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한국인의 앞날에도 원형으로의 회귀 때문에 많은 고난이 따를 것으로 전망한다.
언젠가 서울 대학병원의 부원장을 지냈던 산과 교수가 5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떠나 다시 레지턴드 과정을 밟는다는 유튜브 방송이 나간 이후에 한 시청자분이 이런 의견을 남겼다. 아마도 전직 산부인과 출신의 의사분으로 보인다. 의견에는 원형으로의 회귀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우리 본성이 지금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됩니다. 겨울이면 방구석에 옹기종기 앉아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땅딸구(화투놀음)에 미처 논밭 문서를 부모형제 몰래 훔쳐가서 모두 넘기고서는 봄이 되면 춘곤기를 넘기기 힘들어 본인은 국민학교 때 벤또에 수수조밥을 싸줘서 안 가지고 갔더니 80대 할머니께서 산넘고 물건너 수업중인 교실 문을 쾅 열면서 "무시기야!!! 와 벤또 안 가져갔노?"라는 목소리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가 고희을 바라보고 있네요. 우리나라가 다시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것 같아 너무 무섭습니다. 70년대 후반 산아제한 홍보한다면서 2명이상 출산한 여성을 복강경하게 유도한 적이 있었는데 살아 오면서 제일 잘못한 일 같습니다.
출처: ideogram.ai
[ 공데일리 공병호 기자 ]
공병호의 공직선거 해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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