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건너뛰는 법은 없다"
반드시 건너뛰게 되면 그것에 상응하는 비용을 개인이든 국가든 치루게 된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선거부정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1.
한국인들은 투쟁을 통해서, 피를 흘리면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서구유럽처럼 근대시민사회를 경험하지 못한채 조선말기, 일제 치하 그리고 갑자기 근대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운좋게 월반을 한 셈이다. 한반도 남쪽에 미군정이 자리잡는 행운이 있었고, 이보다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남 이승만이란 인물이 있었던 점이다. 고생하는 동포들을 노예민으로부터의 자유민으로 탈피하시켜야 겠다는 반듯한 신념을 가진 이승만이란 인물이 있었기에 자유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2.
이후에도 경제계발 계획에 추진되면서 국가주의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 권력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에 관한 읽을 만한 책이 아주 드물었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와 미제스, 하이에크 등의 오스트리안학파들이 저자인 책이 손에 꼽을 정도가 있었다. 그만큼 학계, 문화계 등에서 '국가권력의 제어, 개인 자유의 확장'이라는 분위기는 생경한 상태였다.
3.
그래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몇 년간 한국 사회에는 국가권력의 제어를 위한 규제혁파, 민영화, 작은정부 등과 같은 목소리가 학계를 중심으로 조금 나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이런 주장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국가권력의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낮은 성장률이 고착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국가가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대세가 되었다. 정치인들 또한 그런 움직임을 부추기거나 편승하기 떄문에 국가주의를 향한 움직임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 사회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점은 서울대 서양학과의 박지향 교수가 쓴 글에 이런 주장으로 담겨져 있다.
"우리 국민은 문제만 생기면 정부는 무얼 하느냐는
식의 비판을 가한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를 서구인들처럼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두려워하고 제안하려는 자유주의적 전통은 우리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19세기 말 자유주의가
조금씩 유입되기 시작할 때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염원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사실도 사람들의 민족의식과 국가주의를
강화한다."
4.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국회를 중심으로 온갖 법안들이 아무런 제동을 받지 않고 통과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라는 분위기 속에서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은 예사롭게 내팽겨쳐 졌다. 심지어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해서 통신 정보를 이용해서 개인을 억박지르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이제 와서 보면 문 정권의 그같은 독주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 부정선거 즉 득표수 조작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정 정치세력과 노동단체가 선거를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선거를 장악한 자들을 중심으로 장기집권을 거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같이 일반국민들은 함부로 대할 수 있었다고 본다.
5.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유주의 전통이 일천한 나라, 산업화 과정에서도 국가주의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 역사적으로도 자유주의 전통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 또한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환호하거나 맹종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 이런 요소들이 두루두루 영향을 미치면서 과연 한국 사회가 자유주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
최근 인터뷰에서 이응준 작가는 한국인의 특성을 이렇게 쿡 집어서 말한다.
"남북한 모두 피(被)지배자가 지배자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하거나 쏠려가는 대중적 파시즘 성향이 짙다. ‘개딸’을 비롯한 정치인 팬카페처럼 논쟁적인 이슈를 놓고 급격하게 무조건 쏠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런 파시즘에 샤머니즘이 끼어 있으면서 광기(狂氣) 비슷한 열정들이 분출해 이성(理性)적인 사회 작동을 가로막을 뿐 더러 찬찬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능력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굉장히 위험한 사회이다.”
6.
그나마 국민들이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공직선거마저 이제 위태롭게 되었다. 객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2017대선부터 2023 보궐선거까지 모든 선거데이터 즉, 선관위 발표 후보별 득표수는 만들어진 숫자들이다. 선거 결과는 더 이상 국민들이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무엇보다 빼아픈 것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치루어진 두 번의 공직선거가 모두 사전투표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객관적인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서 깊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다수는 아니다. 때문에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사그라 들고 국가주의가 더욱 기성을 부릴 것으로 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원래의 한국 사회의 원형에 걸맞는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7.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주장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제어와 개인 자유의 확대'라는 대원칙이 홰손되면 먹고 사는 문제도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이 권력을 제어할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약탈, 수탈, 억압, 폭정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문 정권 5년에서 그리고 지금 부정한 방법으로 국회를 장악한 자들의 무례한 행보를 보면서도 한국인 앞에 펼쳐지게 될 일을 직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공데일리 공병호 기자 ]
<사진 1> 다발채로 투표함에 투입된 투표지(4.15총선 오산시 재검표)
- 사진 설명: 법원 투표함 제출 명령에 따라, 다발채로 투표함에 투입된 것으로 보이는 위조된 투표지 묶음으로 추정됨. 수 만장의 투표지를 마치 진짜 투표지처럼 접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임. 4.15총선 오산시 경우, '선관위 발표 후보별 득표수'는 6개 동 모두에서 안민석(더불당)은 플러스값, 최윤희(통합당)은 마이너스 값을 가지면 좌우대칭 구조를 보임. 최윤희에게서 사전투표득표수를 빼앗아서 전산적으로 안민석에게 더해주는 일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음. 안민석은 최소 차이값(관내사전-당일투표 득표율)이 최소 5%에서 최대 13%, 최윤희는 -4%에서 -12%임.
<사진 2> 재검표장에 등장하지 않은 사라진 20장의
'관리관 날인없는 투표지'(4.15총선 파주을)
사진 설명: 4.15총선 당일투표일에, 관리관 날인 없는 투표지 20장이 발급된 사실을 확인하고 선거 담당자들이 참관인 입회하에 투표록에 "관리관 날인 없는 투표지 20장이 투표함 속에 투입되었습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4.15총선 선거무효소송 재검표 현장에서 20장의 투표지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사전투표 득표소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숫자들인 '선관위 발표 후보별 득표수'와 투표함 속의 후보별 득표수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함 속의 투표지들을 모두 파쇄 혹은 소각처리하고, '선관위 발표 후보별 득표수'에 맞추어서 새로 제작한 투표지를 투입한 투표함을 법원에 제출하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사건이다.
공병호의 공직선거 해부 시리즈
<도둑놈들 1: 선거, 어떻게 훔쳤나?>
<도둑놈들 2: 2022 대선, 어떻게 훔쳤나?>
<도둑놈들 3: 2022 대선, 무슨 짓 했나?>
<도둑놈들 4: 2020 4.15총선, 어떻게 훔쳤나?>
<도둑놈들 5: 2022 지방선거, 어떻게 훔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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