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정염의 노예다"
인간이란 본래 사실을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본인이 믿고 싶은 것을,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전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인간군상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방송을 지속하고 <도둑놈들> 시리즈를 내면서 이따금 이런 활동에 적대감이나 불쾌감을 표나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가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런 경우도 있지만,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1.
사실 곰곰히 따져보면 지금처럼 득표수를 조작해서 선거부정을 일곱번씩이나 강행하는 것은 하늘 아래에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더욱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이를 덮고 넘어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선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악을 용인한채 어떤 사회가 지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국민들이 결국은 베네수엘라처럼 거의 노예 상태에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용인하는 것은 일반 국민이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죽을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이 어디로 폭주할 수 있는지는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은 부정선거에 대해 무관심하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부정선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문제일 뿐이고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더욱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자신의 출신 등에 기초해서 이 문제를 파헤치는 것 자체에 대해 적대감과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사람들과 조우할 때면, "저 양반이 과연 인간인가?"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3.
인간이면 동물과 달리 선악 개념이 있을 것이고, 인간이면 짐승과 달리 올바름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번이나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반복될 부정선거에 대해 무덤덤한 한국인들을 보노라면 "정말 큰일이다"라는 표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그런 기분이다.
이토록 자신의 이익과 친소관계에 기초를 둔 당파심이란 것이 인간의 선악 개념과 정의 개념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신과 후손들이 치루게 될 비용이 어떤 것인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4.
몽테뉴가 집필한 <수상록>을 읽다보면 흥미로운 대목에 눈길을 두게 된다.
"당파심(黨派心)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의 단상이다. 여기서 당파심이란 "자신이 속한 당파에 치우쳐 무조건 편드는 마음"이란 뜻이다.
몽테뉴는 시작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도가들에 대한 증오심이나 애착심에 얽매여 지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 의지가 개인적인 원한이나 의무감으로 사로잡힌 일도 없다.
나는 우리 임금들을 단순히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정당한 애정으로
쳐다보며, 어느 개인적인 이해 관계로 끌리거나 비위가 상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는 내 마음씨가 고맙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혹은 자신의 당파심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에 대해 몽테뉴 스스로가 자신을 퍽 괜찮은 사람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5.
몽테뉴는 중간에 엉거주춤한 모양새를 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한다.
"이 편도 저편도 아니고 중간에 끼어서 주저하며, 국민이 분열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는데도 마음이 어느 편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훌륭하게도 명예롭게도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를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운수가 좋은 편을 들려고 사건을 기다려보는 태도지, 어느 길도 취함이 아니다.'(티투스 리비우스)
식자층들 가운데서는 부정선거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몽테뉴의 표현대로 "고생은 그 사람들이나 하고, 나는 나중에 떡이나 먹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가 많다. 어디 식자층만 그런가? 이 나라에 정치 지도자들도 대부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
국민 각자가 저마다의 위치에서 문제 해결에 나누어 가져야 할 역할을 전혀 맡지 않으려 하는데,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법무장관이 제대로 하고 있는가? 검찰총장이 제대로 하고 있는가? 국민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가?
눈을 씻고 봐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소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논리적 비약으로 기우제 사고를 피력하는 경우도 잦다. "다 잘 될 겁니다"라는 바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이지 실제로 현실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아니다.
대다수가 강건너 불처럼 문제를 여기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처다보거나, 휙 보고 외면한채 종종 걸음을 쳐버리는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7.
세상사를 관통하는 것은 "투입이 있어야 산출이 있다"이다. 투입이 없는데, 어떻게 산출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훗날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치루면서 사람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부정선거가 고착화 되어서 고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그토록 저항하였지만 결국 부정선거에 기초한 체제가 고착화 되면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국민의 25%인 700만명은 나라를 등지고 떠날 수 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냥 그런 상태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국민의 견제와 제어를 받지 않은 정치권력이 국민을 어떻게 다룰 지 상상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지만,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국인은 더 이상 아니다.
[ 공데일리 공병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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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들 5: 2022 지방선거, 어떻게 훔쳤나?> (5/3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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