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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패션계 거장 피에르 가르뎅 영면에 들다

14세때 재단사로 시작…디오르의 첫번째 재단사로 고용
1950년 자신 이름 딴 브랜드 출시…세계 패션산업 주도
냉전시대에도 중국·러시아에서 패션쇼 선보이며 주목

 

패션계의 전설, 기성복의 선구자로 불려온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2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8세.

 

 

유족은 이날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피에르 가르뎅이 이날 오전 일드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병원에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고 일간 르몽드, 프랑스앵포 방송 등이 전했다.

 

유족은 피에르 가르뎅이 "한평생 보여준 끈질긴 야망과 대담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는 세기를 넘나들며 프랑스와 세계에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남겼다"고 추모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그가 2살이던 해에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넘어왔다.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14살에 처음 재단사로서 실과 바늘을 잡은 피에르 가르뎅은 1944년 패션의 도시 파리로 올라와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영화 촬영에 쓰는 의상 등을 제작했다.

 

이때 장 콕토 감독의 영화 '미녀와 야수'(1946)에 사용할 의상을 만들었고, 콕토 감독의 소개로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알게 돼 1947년 디오르의 "첫번째" 재단사로 일했다.

 

 

1950년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은 피에르 가르뎅은 1954년 엉덩이 부분을 둥그렇게 부풀린 모양의 '버블 드레스'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얻었고 1959년 처음으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1960년대부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셔츠를 비롯해 물병, 부동산 등 수백가지 제품을 선보였던 그는 잘나갈 때 1천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79년 중국 베이징(北京) 자금성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선보인 최초의 서양인이 됐고,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패션쇼를 올린 최초의 디자이너로 기록됐다.

 

피에르 가르뎅은 2010년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아마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고, 내가 선택하면 그곳도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뽐내기도 했다.

 

피에르 가르뎅은 지난 2012년 7월 90세의 나이로 컴백 작품 발표회를 가지는 등 노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패션 산업을 주도했다. 그의 이름이 걸린 상점은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당시 컴백 작품 발표회에서 "나는 아직 내일을 위한 가솔린(에너지)을 갖고 있다"면서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렸고 현재는 가장 나이가 많다. 나는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FP 통신은 피에르 가르뎅이 앞을 내다본 창작뿐 아니라 유행을 주도한 의상을 대중에게 선보인 것으로도 생전에 주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피에르 가르뎅이 1960∼1970년대 초현대적 디자인으로 기존의 패션 스타일을 뒤집어놓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승민 기자 현혜란 특파원 hanksong@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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