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제도나 규칙도 중요하지만, 그 규칙이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 믿음, 가치판단 기준 등도 매우 중요하다.
대체로 한국인들은 규칙(rule)은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2.
젊은 날의 유학경험과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빚어진 선거 무결성 문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응을 관심있게 지켜본다.
우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들은 존재하는 규칙을 예사롭게 바꾸는 일에 대해 상당한 저항이 그 사회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3.
그 사회에서는 설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여러 명의 개인 변호사를 고용하면서 어떤 결정이 법적으로 합법적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미국 대선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우리 같았으면 그냥 대통령의 뜻이 그러니까 "그렇게 하세요" 하면 될 일은 미국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법부가 상대적으로 건재하기 때문에 퇴임 이후에 법적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부분을 행위자가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법치와 인치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
4.
방송을 하거나 설문조사를 하다보면 의견을 남기는 분들 가운데 드물게
후보 교체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다.
이렐리아: "후보교체를 해야지 뭔 말도 안되는 걸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까?"
천 헬렌: "윤석열을 버려야지 산다는 항목은 왜 없습니까? 도대체 보수라는 것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5.
이런 지적에 대해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은 당헌당규에 규정되어 있다. 그 경선과정을 통해서 대선 후보가 결정되었다. 물론 경선과정에서 투표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지적이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헌당규에 따라서 대선 경선이 치루진 것은 사실이다. 그 안에 부정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6.
그렇게 해서 당 차원에서 우리당 대선 후보는 윤 후보다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였다.
윤 후보의 인기가 좀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를 교체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절차가 과연 당헌 당규에 규정되어 있는 가라는 점을 나는 묻고 싶다.
윤 후보에 대해 호불호를 떠나서 이 문제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선 후보 교체론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당헌 당규에 그런 규정이 있는 가라는 점이다.
7.
그냥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룰을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바꾸어서 당 후보를 교체하자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모든 일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합법이란 실증법은 물론이고 당헌 당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8.
젊은 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늘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는 후닥하면 규칙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버리는데 익숙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의식 깊숙이 규칙이란 것은 편의에 따라,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개인적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옳은 일이 아닐 뿐더러 합법적인 일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