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프랑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급증한 국가채무가 신흥국의 금융 안정성을 취약하게 하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프랑켈 교수는 이날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면·영상 혼합 방식으로 개최한 '2021 주요 20개국(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세계 경제의 불균형 회복'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켈 교수는 "세계 경제가 올해 상반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지만, 하방 위험도 자명하다"며 "주식,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 가격, 특히 위험자산의 가격이 펀더멘털이 정당화할 수 있는 이상으로 폭등하는 '에브리씽 버블'(모든 것이 버블)이 터질 수 있고, 접종률도 전세계적으로 필요한 만큼 올라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리 인상과 거품 붕괴가 신흥국·개발도상국의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켈 교수는 신흥국이 빚을 늘려 재정 부양책을 펼친 데 대해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문제는 부채의 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선진국 등 선진국은 (부채 문제를)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신흥시장은 상황이 다르다"며 "신흥시장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2014년 이후 증가하다가 특히 작년에 급증했는데, 신흥시장 국가채무와 금융 안정성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이고 금리 인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가 인상되면 신흥시장의 금융 안정성이 금방 붕괴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GDP 대비 부채비율이 올라가는 건 막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1982년을 보면 긴축이 엄청난 부채 위기로 바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이후에 페소 위기, 위환위기, 긴축발작 등 사례가 발생했다"며 "신흥국 부채 위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켈 교수는 "'에브리씽 버블'과 관련해 금융 취약성을 사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도 계속 (다른나라 정부와 중앙은행에) 신호를 보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미리 공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비트코인 등의 가격이 이렇게 상승하는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전 세계에 6만개에서 11만개의 암호화폐가 존재한다는데 이것만 봐도 버블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프랑켈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도국이 선진국의 소득을 따라잡는 상황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신흥국은 선진국 대비 훨씬 높은 성장률을 보여왔는데 2013년 이후 크게 둔화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켈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올해 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선진국 경제전망을 상향 조정했으나 신흥국과 개도국은 하향 조정했다. 특히 저소득국 성장률은 3.9%로 낮췄는데 저소득국가 성장세가 선진국보다 낮은 것은 21세기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등 선진국에 남아도는 백신을 개도국, 저소득국에 나눠주려는 더 본격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500억 달러의 비용을 써서 개도국, 저소득국의 백신 접종률을 올리면 거의 200배인 9조달러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켈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위험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세계적인 글로벌 상호의존성"이라며 "이것을 해결하는 게 G20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콘퍼런스에는 G20 회원국 정부·중앙은행 관계자와 전문가 등이 참석해 ▲ 코로나 시대 거시경제 위험요인의 국제금융시장 영향 및 대응 ▲ 디지털화폐가 국제금융시장·체제에 미치는 영향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금융시장·체제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아이한 코제 세계은행(WB) 개발·전망 국장은 "코로나19 이후 세계경제가 단기적으로 선진국 중심의 강력한 회복세를 보였으나 향후 10년간 성장세가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팬데믹 통제, 물가 안정, 재정건전성 확보, 녹색·포용 성장 등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자산가격 버블 우려가 큰 상황에서 향후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 시 신흥국 자본 유출 가능성이 크다"며 건전한 통화·재정정책, 거시건전성 조치, 국경 간 자본흐름 관리 방안 등 정책조합과 신흥국 내 매력적 투자자산 발굴·육성 등을 자본이동 변동성 완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윤성관 한국은행 전자금융부장은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GSC)에 대해 각국의 통화주권이 제약받을 위험이 있고, 현재로선 실생활에서의 활용도가 낮고 환금보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개회사에서 "미국의 통화정책이 급격히 전환될 우려는 다소 완화하고 있으나 자본 유출 및 변동성 확대가 신흥국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홍장표 KDI 원장은 "백신이 신속하게 공급되고 대규모 재정 금융지원이 가능했던 선진국은 경제회복 속도가 비교적 빠르지만, 신흥국은 예상보다 회복 속도가 더디다"며 "선진국과 신흥국 간 회복 차이는 세계 경제 회복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켈 교수는 별도로 진행한 서면 언론 인터뷰에서 "미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 신호에 따라 세계적 금리 상승 가능성이 있으므로 결국 한국도 현재의 재정 및 통화정책 기조를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으로서는 한국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행해온 것이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많은 국가들이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감당할 만한 신용도를 갖고 있지 않은데 한국은 그런 국가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아직 견고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거의 비슷하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2003∼2007년, 2010∼2013년과 같은 고성장 기간을 활용해 재정을 건전화함으로써 2008∼2009년, 2020∼2021년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여력'을 만드는 경기 대응적 재정 정책을 선호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프랑켈 교수는 "재정 적자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한 사이클에 걸쳐 평균적으로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며 "이런 위험은 부채가 경제적 불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GDP 대비 부채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신흥국이 외부 충격에 덜 취약해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전바적인 부채 수준을 제한해야 한다"며 "통화 불일치를 방지하기 위해 달러화 부채를 피하고 과도한 단기 차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랑켈 교수는 "미 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금리 인상의 시기를 암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지난 40년 동안 여러 부채 위기를 촉발시킨 것도 사실"이라며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자산 유보로 인한 '서든 스탑' 위헙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정부가 재정 적자를 실행하는 것은 적합했다"며 "그러나 부채 수준이 높아질수록 미국 금리 인상과 같은 외부 충격이 GDP 대비 부채 비율을 지속불가능하게 만들 위험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momen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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