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1년…선거제 개편·충성서약·신문 폐간 '일방통행'

  • 등록 2021.06.28 11: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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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사라지고 범민주진영은 붕괴 위기…"모호하고 가혹한 법"
교육·예술계에도 파장…당국 "홍콩, 질서 되찾아" 평가하기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오는 30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중국 정부가 2019년 홍콩에서 반년 넘게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밀어붙인 법이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국가 정권 전복·테러 활동·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대표적인 범민주진영 인사 50여명이 한날한시에 체포하는 등 그간 홍콩 당국은 100여명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60여명을 기소했다.

 

네이선 로(羅冠聰) 등 야권 인사의 해외 망명이 이어졌고, 지난 1월 말 영국이 홍콩인을 대상으로 이민 문호를 확대하자 두달 만에 3만4천건의 신청이 몰렸다.

 

홍콩보안법 시행 보름 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 등 홍콩보안법 제정에 관여한 중국과 홍콩 정부 관리들에 대해 제재도 부과했다.

 

영국·독일·캐나다·호주·네덜란드 등은 홍콩보안법을 비판하며 홍콩과 범죄인 인도 협약의 효력을 중단했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 정부는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이 질서와 안정을 되찾았다"고 자평했다.

 

 

◇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충성서약·선거 후보자 자격심사

 

이전까지 '홍콩의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많은 일들에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지난해 9월 예정됐던 입법회(의회) 선거가 연기되더니 공직선거 출마자의 자격을 '애국자'로 명백히 제한한 홍콩 선거제 개편이 이뤄졌다.

 

공직자의 '충성서약' 대상이 모든 공무원과 구의회 의원에까지 확대됐고, 충성서약을 위반했다고 판단될 경우 해고와 자격박탈 등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범민주진영은 홍콩보안법이나 충성서약에 대한 위반을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한 반면 처벌 수위는 높은 가혹한 법이라고 비판한다.

 

홍콩 당국은 범민주진영 입법회 의원 4명에 대한 자격을 박탈했고, 이에 반발한 나머지 야권 의원들이 모두 사퇴해버렸다.

 

공무원 120여명이 충성서약을 거부해 해고됐고, 구의회의원 수십명이 다음달 충성서약을 앞두고 사퇴해버렸다.

 

홍콩 제2 야당인 공민당이 해체 논의를 하는 상황이고, 또다른 야당 신민주동맹은 해산했다.

 

범민주진영이 붕괴 위기에 처한 가운데 홍콩 유일의 민주진영 신문으로 평가받아온 빈과일보가 지난 24일 폐간됐다.

 

당국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과 자산동결을 단행하고 간부와 논설위원을 체포하자 26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빈과일보 폐간 다음날 중국 정부는 존 리(李家超) 홍콩 보안장관을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로 임명하는 등 홍콩보안법 시행에 앞장서 온 인사들을 승진시켰다.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경찰 및 안보분야 출신이 정무부총리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존 리 정무부총리는 최근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경찰이 지난해 11월 개설한 홍콩보안법 신고 핫라인을 통해 10만여건의 가치있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혼란을 멈췄다"고 말했다.

 

 

◇ '불법집회 관여' 혐의 대거 실형…톈안먼 추모집회 32년만에 '봉쇄'

 

지난 1년간 당국은 2019년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해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관여한 혐의로 범민주진영 활동가들을 대거 잡아들였다. 상당수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지미 라이(黎智英), 조슈아 웡(黃之鋒) 등 홍콩의 대표적 민주화 운동가 상당수가 불법집회 관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시민사회는 홍콩보안법 발효 후 불법집회 관여 혐의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고 비판한다.

 

과거에는 불법집회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벌금형이나 구류가 선고됐는데, 이제는 징역 18개월까지 선고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대법원인 최종심 법원을 상징하던 외국인 판사들이 잇따라 사임했다.

 

지난해 9월 호주 출신 제임스 스피겔맨 판사가 2년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사임했다. 그는 이후 호주 언론에 자신의 사임이 홍콩보안법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지난 3일에는 영국 출신 비상임 판사 바로네스 브렌다 헤일이 다음달 임기가 끝나면 재임용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헤일 판사는 영국에서 진행된 온라인 포럼에서 "홍콩에서 부상하는 문제는 홍콩보안법에서 기인한다. 이는 시위와 시민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고 말했다.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진행되던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집회는 2년 연속 불허됐다. 당국은 올해는 아예 빅토리아파크를 봉쇄해버렸다.

 

2003년부터 매년 7월 1일 주권반환일 집회를 개최해온 민간인권전선은 18년만에 처음으로 올해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톈안먼 추모집회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와 민간인권전선은 모두 대표가 불법집회 관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해체가 임박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 교육과정 개정·영화 검열·공영방송 개편…'가짜뉴스' 단속

 

교육·예술·언론계·학계 등에도 홍콩보안법의 파장이 미치고 있다.

 

6세부터 홍콩보안법을 교육받게 됐으며 모든 과목에 걸쳐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교육지침이 하달됐다.

 

2019년 반정부 시위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로 친중 진영이 지목한 고등학교 시사교양과목은 내용이 전면 개정됐다.

 

한때 '홍콩의 BBC'라 불릴 정도로 공정성을 인정받았던 홍콩 공영방송 RTHK는 지난 3월 방송국장으로 행정부 관리가 임명된 후 친중 진영의 비판을 받아온 시사프로그램이 폐지됐고 간부들의 사직이 이어졌다.

 

당국은 최근 영화 심의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영화 심의도 홍콩보안법에 근거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홍콩 학자들이 잇따라 신문 칼럼 절필에 나섰고, 학계에서는 연구주제 선택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홍콩 경찰은 '가짜뉴스'를 단속하겠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론슨 챈 홍콩기자협회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홍콩보안법으로 레드라인이 설정됐다"면서 "그러나 당국은 레드 라인이 어디까지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언론인들은 경찰이 자택 문 앞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레드 라인을 넘었는지를 결코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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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림 기자 info@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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