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한 여지를 조금씩 더 넓히는 모양새다.
재계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기에 맞춰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회장의 광복절 특사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쉽게 결정할 사안 아냐"→"고충 이해한다"
앞서 지난 4월 경제 5단체장이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공식 건의하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사면 건의와 관련해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고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질의응답에서 "결코 대통령이 마음대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들어 판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비해 다소 완화된 입장이긴 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두는 톤이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서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25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많은 건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국민정서,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2일 4대 그룹 대표와의 오찬 간담회에서는 "(기업의)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했다.
기존 발언과 비교하면 한층 전향적인 시각을 읽어낼 수 있는 언급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제 5단체장이 건의한 것을 고려해달라"며 사면을 우회적으로 언급하자, 문 대통령이 "경제 5단체장의 건의가 뭘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은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에 최 회장이 '사면'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사면론에 대한 대화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 대통령이 더 확실한 메시지를 내기 위해 '사면'이라는 단어가 직접 나오도록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 반도체 글로벌 경쟁 속 국민여론 염두…靑 "두루 의견 듣겠다는 것"
이런 기류 변화의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의 국제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찬에 참석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도체는 대형 투자결정이 필요하다.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며 사면을 통해 기업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한미정상회담 시기에 맞물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과감한 대미투자에 나서면서 한미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지원 사격했다는 점도 문 대통령에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이번 방미 당시 4대 그룹이 함께 해 성과가 참 좋았다"고 평가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10∼12일 전국 성인 1천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 사면 찬성 의견이 64%로 집계되는 등 여론이 사면에 우호적이라는 점도 고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두루두루 의견을 듣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하는 등 확대해석은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hysup@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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