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연구실 유출설이 사실이라면

  • 등록 2021.06.01 11: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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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초기 유출설 일축했던 과학계도 태도 바꿔…유출설 뒷받침하는 연구도
WP "연구실 유출설 사실이면 중국 왕따 국가 되고 미 대통령에겐 난제 될수도"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음모론 취급을 받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연구소 유출설이 유력한 이론으로 급부상했다.

 

이 가설은 중국의 우한(武漢)바이러스연구소가 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앙이란 것이다. 고의든, 실수든, 또 이 바이러스가 자연발생한 것이든, 생물학 무기로서 인위적으로 합성된 것이든 이 연구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출되면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연구소 유출설 자체는 새롭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사태 초기부터 소문으로 돌았다.

 

새로운 것은 종말론 영화나 좀비 영화에서 본 듯한, 그래서 주류 과학계가 일찌감치 일축했던 이 가설을 '개연성 있는 이론'으로 둔갑시킨 정황의 변화다.

 

논란의 직접적 촉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였다. 이 신문은 미 정부의 비공개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연구원 3명이 2019년 11월께 코로나19와 일치하는 증상으로 몸이 아파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때는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직전이다.

 

더 크게 달라진 것은 과학계의 반응이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던 과학계가 이번에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보도가 나오기 며칠 전 미국의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여전히 코로나19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답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런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의 발생 기원을 찾으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도록 정확한 출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 한 가지다.

 

스콧 고틀리브 전 미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코로나19가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실에서 유출됐다는 정황 증거가 늘고 있다며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대규모 발병이 일어난 뒤 지금 정도의 시점에는 그 질병이 발원한 동물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19는 아직까지 동물로부터 기원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중국의 유일한 생물학적 안전성 4단계 연구소이고 이 연구소가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해왔다는 점도 공교롭다. 이 연구소에서 멀지 않은 우한의 수산물 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돼왔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미생물학 교수 데이비드 렐먼은 작년 11월 미 국립과학원(NAS) 회보에 쓴 기고문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설명에 많은 핵심 사항이 누락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바이러스의 개연성 있는 진화 과정이나 가장 최근 시조는 물론 놀랍게도 최초 인간 감염의 시간과 장소, 전염 기제조차 여전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적 구조를 볼 때 이 바이러스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도 같은 달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 흥미로운 칼럼을 실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연구실 유출설이 사실이라면 어떤 파장을 낳겠느냐는 것이다.

 

이 칼럼은 "실험실 사고에서 유래한 치명적인 전 세계적 팬데믹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의 각본"이라며 "여기에 마침 공산주의인 사악하고 강력한 외국 정부가 관여해 있다는 사실은 거의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 가설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화가 날지를 고려할 때 중국은 왕따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내기를 거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이미 알려졌지만 연구실에서 유출됐다면 이는 더 나쁜 것이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면 더 그렇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중국에 광범위한 제재를 하자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큰 난제가 던져진다. 연구설 유출설이 사실이라면 이를 묵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중국과 교역해야 하는 현실상 제재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의 60만명이 코로나19로 숨지며 세계 최대 코로나19 피해국이 된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대응을 해야 하고 이는 행정부에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칼럼은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대응을 이끄는 일도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를 크게 잡아먹을 것이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공정이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미세먼지 논란 등 다양한 요인들로 고조되고 있는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개연성이 상당하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에도 교역 1순위 국가다. 한반도의 안보 문제에서도 중국은 중요한 관련국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논란의 연구실 유출설이 입증될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것을 외려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WP는 칼럼에서 이번 논란의 가장 좌절스러운 면은 이 가설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높아진다고 해서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까지 높아지지는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상황은, 실제로는 틀릴지도 모르지만 결코 틀렸다고 입증되지도 않은 채 여전히 입증되지 않은 가설로서 수년간 정치적 논쟁거리로 살아남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미 35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가며 전 인류의 삶을 되돌릴 수 없이 뒤집어놓은 이 전염병의 기원에 관한 진실은 대부분의 인류에게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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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림 기자 info@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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