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12일(현지시간)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백악관이 이날 굴지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자동차 제조업체 등 19개 사와 함께 '반도체 화상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잠시 합류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이번 회의의 발단은 전 세계적인 자동차용 반도체 칩 부족사태다.
자동차업계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탓에 수요가 줄 것으로 판단하고 칩 주문량을 줄였다가 예상외로 자동차 판매가 선전하면서 물량 부족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주요 자동차 생산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는 등 문제가 커지자 백악관까지 나서서 방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 됐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최대 130만 대의 차량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반도체 칩 부족은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컴퓨터, 휴대전화 등 칩 부족시 영향을 받는 다른 전자제품 제조사들도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AP통신도 칩 부족 사태는 학교가 학생들의 재택 수업을 위한 컴퓨터 구매를 어렵게 하고, 최신 비디오게임기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더큰 문제의식은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니다. 반도체가 5세대(5G),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이자 첨단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품목이지만, 미국이 절대 물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능력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였지만, 현재 12%로 급격히 감소했다.
더군다나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정부의 각종 지원을 토대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수출 비중도 키워왔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자체 육성하거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칫 중국에 물량을 의존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미 당국의 인식인 셈이다.
미 당국자 입에서 반도체를 국가안보 문제로 본다는 말이 나온다거나, 이날 회의를 안보의 실무 총책인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한 것이 그 방증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올린 뒤 "반도체가 인프라"라며 미국의 공격적인 투자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조2천500억 달러(2천53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반도체 제조 및 연구 지원 예산 500억 달러를 포함했다.
미 의회는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반도체 생산 촉진을 위해 연방정부가 지원에 나설 수 있는 조항(Chips for America Act)도 담았다.
기존 주 정부의 토지 제공, 세제혜택 외에 연방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설 근거를 만든 것이지만, 이 법의 실행을 위해선 별도의 지출예산 법안이 필요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500억 달러가 이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해당한다.
미국은 재정적 노력 외에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도 이미 나선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와 희토류, 자동차용 배터리, 의약품을 4대 핵심 품목으로 선정해 이들의 공급망에 대한 100일간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역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메모리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최첨단을 걷고 있어 미 정부의 움직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미국 기업인 인텔이 최근 2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며 경쟁에 뛰어드는 등 미국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 용량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삼성 역시 미국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추가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고 텍사스 오스틴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상태다.
반도체 공급망에서도 동맹과 협력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기업에 우호적 손짓을 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자, 상황에 따라 미국 내 투자 장려를 위해 무언의 압박을 할 개연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각종 제재책을 강화할 경우 중국 내 생산공장이 있고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으로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날 백악관까지 나서서 반도체 칩 부족 해결을 위해 적극 뛰어들었지만, 현재 벌어지는 단기적 공급난을 해소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AP는 업계 전문가들은 자동차 칩 부족 사태가 올해 3분기 말에야 해소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류지복 특파원 jbryoo@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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