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북부 국경 지역에서 7살 온두라스 여자아이가 어두운 새벽 낯선 어른들 틈에 섞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뒤처질세라 열심히 팔까지 흔들며 보조를 맞추는 이 소녀의 목적지는 국경 너머 미국이다.
AP통신이 23일(현지시간) 소개한 이 온두라스 어린이는 최근 미국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나홀로' 미성년 이민자 중 하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중미 등에서 보다 '열린 미국'에 대한 기대를 품은 이들의 미국행이 늘어난 가운데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의 미국행도 크게 늘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2월 미 국경에 도착한 미성년 이민자는 9천500명으로, 1월보다 60% 급증했다. 대부분 10대지만 그보다 어린 아이도 수백 명이다. 국경의 보호시설엔 미성년 이민자들이 넘쳐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성인도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위험한 밀입국을 미성년자 혼자 감행하는 이유는 보호자를 동반할 때보다 미국 입국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성인 혼자 밀입국하다 미 당국에 적발되면 대체로 추방된다. 가족 단위 이민자의 경우 운좋으면 남아 망명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일부는 추방된다. 그러나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미성년 이민자들은 추방을 피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 8천800명 이상을 가차없이 추방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미성년자들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국경을 넘은 아이들은 국경 임시 보호시설을 거쳐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소에 수용되며, 미국 내에 다른 가족이나 보호자가 있으면 이들에게 인계돼 망명 절차를 밟게 된다.
AP가 만난 온두라스 7살 소녀의 경우 아버지와 22일 동안 멕시코를 가로질러 국경에 도착했다. 이후 아버지는 어린 딸을 한 젊은 남성의 손에 맡기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채 온두라스로 돌아갔다.
이 남성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이는 한밤중에 길에서 혼자 울고 있다가 다른 이민자들의 눈에 띄어 동행하게 됐다.
아이는 전에 아버지와 함께 미국행을 시도했으나 미 당국에 적발돼 함께 멕시코로 추방됐다고 했다. 실패 이후 아버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딸을 홀로 보내기로 했다.
이 소녀는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한 후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자수했다. 당국에 아이의 행방을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에 도착한 나홀로 미성년 이민자들 중엔 밀입국 과정에서 어른과 헤어진 경우도 있지만, 온두라스 소녀의 사례처럼 자식만이라도 미국땅을 밟을 수 있도록 부모가 혼자 보내는 경우도 있다.
미 텍사스주의 인권 운동가인 제니퍼 하버리는 AP에 "이민자 부모들은 '우린 성공하기 힘들겠지만 아이를 국경 다리까지 데려다주고 아이들이 홀로 국경을 넘으면 미국이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미혜 특파원 mihy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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