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
“역지사지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접하면서 든 생각은 한 마디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이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려서 3.1절 행사에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그런 발언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2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가간의 관계라는 것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강경책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한일관계를 벼랑끝으로
내몬 그 무모한 기백을 어디에 갔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 선동적인 언사는 어디로 던져버리고 갑자기 고분고분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3.
이웃나라와의 관계도 한 국가가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도 우방과의 관계는 정말 귀한 자산이다.
그런 자산이 만들어지는 여러 세대가 걸린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정부는 만드는 것이나 축적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만들어 둔 것을 깨부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경제든, 외교든 간에 손만 대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4.
3월 2일자 신문들은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정말 말이 많다.
대체로 아무 대책 없이 강경책으로 한일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할 대로 다 이용한 다음 대통령 말과 태도가 180도 달라지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도대체 국제사회에서 이런 대통령을 보고, 이런 한국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울 뿐이다.
상황에 따라 180도 손을 뒤집듯이 행동하는 사람이나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5.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 1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 힘 의원은 직설적으로 문 대통령을 이렇게 표현한다.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는 문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해 정신분열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대일 강경론에서 유화론으로 180도 달라졌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6.
우리끼리야 흠결이 좀 있더라도 “저 양반이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고 만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국가 간의 관계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남남이지 않는가.
여기에 한일관계의 진짜 현주소를 지적한 글이 있다.
7.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가 “한국방파제론 일본에 안 통한다”라는
제하의 칼럼을 기고하였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핵심은 이렇다.
요즘 한·일 외교가에서 벌어진 희비극은 최악의 양국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 도쿄·서울에 각각 부임한 강창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신임 대사 모두 상대국 정상은커녕 외교 수장조차 못 만나고 있다.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가 정권이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강 대사의 외상·총리 면담을 미루자 한국도 똑같이 나온 결과다.
지난해 말 일본에서는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부차관의 글이 화제였다.
그는 한반도 미래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로 핵보유국 행세를 하는 북한에 남한이 정치적으로 종속되거나,
둘째로 남한이 한·미 동맹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 핵무장을 추구하거나,
셋째로 남북이 느슨한 연방제 형태로 갈 것으로 봤다.
누군가 의견을 묻는다면, 두 번째가 확률이 가장 낮다고 본다.
어떤 경우든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핵 위협을 받게 돼 중거리 핵전력(INF)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요컨대 한국이란 방파제가 없어질 테니 독자적 억제 능력을 갖추라는 얘기였다.
이렇듯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을 방파제로 여기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니라는 이야기가 일본 내에 지배적이라는 이야기다.
8.
요약해서 말하자면 상대방이 우리를 조금도 믿을 수 없을텐데,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먹힐 수 있겠는가.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방파제가 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어떤 경우든 자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멀쩡한 국가관계를 파국으로 내몰고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 이후의 한일관계와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일관계를 이렇게 파국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다.
거시적으로 보지 말고, 한국 산업 구석구석이 어떻게 일어서게 되었는지를
좀 자세히 들여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