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한국 내 동결자금 중 약 10억 달러(약 1조1천억원)를 돌려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동결자금 문제는 대(對)이란 제재를 시행 중인 미국과 협의할 사안으로 아직 반환 여부와 금액 등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스푸트니크 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기자 브리핑에서 "한국이 미국의 제재로 한국의 은행에서 출금이 동결된 이란 자산을 풀어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조치로 우리는 이란 중앙은행의 자산 10억 달러를 돌려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날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가 유정현 주이란대사를 만나고 한국 내 동결자산 사용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구체적인 동결 해제 자금의 규모가 나온 것이다.
앞서 이란 정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양측은 한국 내 이란 동결 자산을 이란이 원하는 곳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으며, 이란 중앙은행은 한국 측에 이전 자산의 규모와 목적지 은행을 통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이날 동결된 이란 원화 자금의 활용 방안과 관련, 한국 측 제안에 이란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유정현 주이란대사와 이란 중앙은행 총재 간 면담 시 이란 측이 우리 측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동의 의사를 표명하는 등 기본적인 의견접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과 이란이 기본적인 합의에 동의했더라도 동결자금 해제를 위해선 미국의 승인이 필수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실제 동결자금의 해제는 미국 등 유관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란 대변인이 언급한 10억 달러 등 구체적인 금액에 대해서도 정해진 게 없으며 관련 문제를 계속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날 이란의 발표로 한국이 미국과 협의 없이 동결자금을 보내기로 이란과 합의했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에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여부가 동결자금 문제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핵합의 강화 및 연장을 위해 현재 이란과 기 싸움을 하는 상황으로 이란으로부터 원하는 반응을 얻지 않는 한 동결자금을 비롯한 제재 문제에서 먼저 유연한 입장을 보이기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은 70억 달러(약 7조7천억 원)로 추산된다. 이란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려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으며, 이란 정부는 이 동결 자금을 해제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란이 지난 달 4일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한국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가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석방하기로 한 배경도 동결자금 해제를 압박하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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