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영업 제한으로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을 법제화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실현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가가 공익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의 생계를 제한한 만큼 이 과정에서 입은 손실을 체계적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어떤 형태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얼마나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 좀 더 중요하게는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채 법제화를 추진하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이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영업손실 지원→법적 피해보상
24일 경제계에 따르면 자영업자에 대한 영업손실 보상 논의는 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 격상에 따라 시작됐다.
정부가 지난해 3차례에 걸친 코로나19 유행을 막고자 자영업자들에게 부과한 영업제한·금지 조치가 이들에게 막대한 영업 손실을 끼쳤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3차례에 걸쳐 집합제한·금지 업종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지만 피해 규모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1차 때 150만원, 2차 때 200만원, 3차 때 최대치로 수령했다해도 지원금 수준은 650만원이다. 대표적 고정비인 임대료에도 못 미친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현재 논의되는 손실보상 논의는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서 소상공인에 대한 영업을 국가가 제한·금지한다면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을 법제화하는 내용이다. 정치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기획재정부에 제도화 방안을 지시하면서 전면 부상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일회성 지원'이었던 반면 현재 논의는 국가가 끼친 피해에 대한 법적 손실 보상을 의미한다.
◇ 자영업자 비중 25%…G7 국가의 2배 육박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자영업자의 손실은 결국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던 만큼 국가 차원에서 보상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정부 조치에 따른 손실이므로 조치에 따른 피해보상을 명문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문제는 결국 재원이다. 학계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이를 실행할 만큼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5.1%로 G7 국가 평균인 13.7%의 2배에 육박한다.
미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6.3%, 캐나다는 8.3%, 독일은 9.9%, 일본은 10.3%, 프랑스는 11.7%, 영국은 15.1, 이탈리아는 22.9%로 모두 우리보다 낮다.
이에 비해 지난해 G7 국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예상치(IMF 기준)를 보면 평균이 5조4천4480억달러로 한국(1조5천867억달러)의 3배가 넘는다.
영업제한 소상공인에 독일 정부가 임대료·인건비를 최대 90%까지를, 프랑스 정부가 최대 월 1만유로(약 1천340만원)를 지급하는 것은 결국 감당할 만큼 재원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는 큰 반면 지원 대상 자영업자 수는 작다 보니 우리보다 지원 규모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손실보상 제도화에 대해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한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의 발언은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큰 선진국도 일회성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손실보상을 법제화할 경우 한국경제가 감당할 여력이 있느냐는 문제 제기인 셈이다.
◇ 월 1.2조, 월 24.7조…돈 쓸 방안만 있고 재원 조달 방안은 없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자영업 손실보상 법안 중 더불어민주당 민명덕 의원안은 월 24조7천억원이 소요된다. 같은 당 강훈식 의원안도 월 1조2천억원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자영업 구도에서 60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에게 300만원만 줘도 1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일반업종, 집합제한 업종, 집합금지 업종에 따라 100만·200만·300만원을 나눠준 3차 재난지원금에 소요된 예산은 4조1천억원이다.
문제는 돈 쓸 방안만 있고 재원 조달 방안은 없다는 점이다. 이같은 재원 소요를 감당하는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국채 발행, 중장기적으로는 증세를 의미한다. 국채 발행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가신용도에 타격을 입힌다. 국가채무불이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부를 수 있다. 증세는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한 사안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영업제한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국가 재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하는 것은 나라 곳간지기의 역할로 국민이 요청한 준엄한 의무이자 소명"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가채무의 급속한 증가 등 재정 여건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적자국채 발행은 지난해 104조원, 올해 93조5천억원, 내년에도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지난해 말 43.9%에서 올해 47.3%로, 내년은 50% 선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 손실보장을 법제화할 필요성은 있지만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한다는 세부내용은 관계부처가 그때그때 결정할 수 있도록 신축성을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용주 차지연 이보배 정수연 기자 spee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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