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2일 세계 노예제도 철폐의 날을 맞아 21세기에 현대판 노예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많은 주민이 사실상 현대판 무국적 노예로 강제 노동 등 다양한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고 국제사회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노예’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 생산 수단을 빼앗긴 채 남의 소유물이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노예를 사고파는 전통적 의미의 노예제도는 이제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유엔은 다른 형태의 ‘현대판 노예’가 21세기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현대판 노예란
유엔에 따르면 현대판 노예는 강제노동과 어린이 노동, 인신매매, 노예 등 신분의 대물림, 강제결혼 피해자들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일 세계 노예제도 철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이런 현대판 노예 피해자가 전 세계에 4천만 명, 이 가운데 여성과 소녀가 71%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구테흐스 총장] “But slavery is not simply a matter of history. Today, more than 40 million people are still victims of contemporary slavery. Women and girls account for over 71 per cent.”
국제사회는 이런 현대판 노예의 대표적 국가로 북한을 꼽습니다.
북한은 현대판 노예 인구 비율 최대 국가
호주에 분부를 둔 국제 비영리 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은 지난 2018년 발표한 ‘세계노예지수’(Global Slavery Index)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현대판 노예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인구 1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64만 명 이상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등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겁니다.
이 단체는 이런 현대판 노예 제도를 유발하는 핵심 요인으로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을 강제노역으로 내모는 압제 정권을 지적했습니다.
이 단체와 함께 탈북민 50명을 심층 면접해 별도로 북한 보고서를 작성한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렘코 브뢰커 교수는 앞서 VOA에, 노동당 고위간부들을 제외한 모든 북한 주민들이 사실상 현대판 노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브뢰커 교수] “You can’t leave your assigned job, you can’t say no…”
“북한 주민들은 일한 만큼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 직장 내 명령을 거부할 수 없으며, 주거지나 나라를 마음대로 떠날 수 없기 때문에 현대판 노예”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정한 직장에서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일해야 하는 환경, 올 연말까지 진행 중인 80일 전투 등 각종 노력동원, 정치범수용소(관리소) 등 각종 수감시설 내 강제노역을 북한의 대표적인 노예 노동으로 꼽습니다.
유엔 인권기구(OHCHR)와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지구촌 노동자들은 개인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직장 내 조직 등을 만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에 대한 강제노동, 임금과 고용에서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북한 정권은 이를 대부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국제 보고서들은 지적합니다.
미 정부가 말하는 북한의 노예 노동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로라 스톤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등 미 관리들은 특히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노예 노동자”로 간주하며 북한 당국의 임금 착취와 강제 노동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We see the tragic example of forced labor in North Korea as well. Untold number of North Korean citizens are subjected to forced labor oversea by the own government,”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탐사 취재를 통해 북한 노동자 수백 명이 중국 내 공장에서 생산한 코로나 보호 장비가 외국에 수출되고 있다며, 북한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최대 18시간 일하며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국무부 연례 인신매매보고서는 올해 북한을 18년 연속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분류하면서 “북한은 어린이 노동과 강제동원 노역, 해외 노동자 착취 등을 일삼는 인신매매 후원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밖에 중국 내 탈북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건설 노동에 투입되는 북한 군인들, 10대 중반부터 10년간 돌격대에 차출돼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40만 명에 달하는 북한 청년들도 현대판 노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 간부들도 "고급 노예"
북한 엘리트 출신 탈북민들은 일반 주민뿐 아니라 북한 간부들도 사실상 김씨 정권의 “고급 노예”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 2010년 워싱턴을 방문해 가진 강연에서 자신은 당 비서였지만, 소신을 밝힐 수 없는 “고급 노예”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황장엽 전 비서] “이 중앙당 비서라는 것은 김정일에게만 복종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아요. 노예 생활과 같다고요. 다만 우리가 고급 노예이지. 한 사람만 섬기는 고급 노예이지 노예 생활과 같다고요. 아무런 자유가 없지요.”
영국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태영호 한국 국회의원도 지난 2017년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을 자유가 없는 “현대판 노예”로 표현했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The reason why I gave up all the privileges and economic benefit was that I felt I could not let my sons lead a life like me as a modern-day slave.”
자신이 북한에서의 모든 특권과 경제 혜택을 포기하고 탈북한 이유는 두 아들이 자신처럼 현대판 노예로 살도록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란 겁니다.
"여권 없는 북한 주민들, 현대판 무국적 노예"
영국에서 탈북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지난해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주체사상과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 등 세뇌교육과 선전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현대판 노예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대표는 1일 VOA에, 유럽의 많은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할 때마다 북한이 생각난다며, 북한 주민들은 사실상 무국적 노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올해 제가 무국적자들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여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하나의 무국적자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북한 주민들 자체가 공민증은 있지만, 사실 그 공민증을 노예 번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특권층과 파견 인력을 제외하면) 이동할 수 있는 여권 자체가 없기 때문에 북한 주민은 무국적자이면서 현대판 노예인 것이죠.”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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