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대선 패배 이틀 만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레임덕 상황에서 패배에 승복하지 않은 채 인사권을 휘두른 것이다. 정권인수를 뒷받침할 안정적 국가안보 유지가 중요한 시점에 눈엣가시로 여기던 국방장관을 경질, 대선 불복에 이어 브레이크 없는 폭주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아주 존경받는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된) 크리스토퍼 C. 밀러 대테러센터장이 국방장관 대행이 될 거라는 걸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어 "밀러는 잘 해낼 것!"이라며 "마크 에스퍼는 해임됐다. 나는 그의 공직에 감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경질은 대선 승리가 조 바이든 당선인에게 돌아가고서 이틀 만에 이뤄진 것이다. 밀러 대행의 지명에 즉각 효력이 있다고 발표, 당장 에스퍼 장관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모양새를 취했다.
대선 패배로 정권인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사실상 레임덕 상황에 접어든 시기에 인사권을 행사한 셈이다. 남은 기간 현직 대통령으로서 보유하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휘두르며 '마이웨이' 수위를 한층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미 지난 6일 보니 글릭 국제개발처(USAID) 부처장도 해임되면서 '비충성파'에 대한 숙청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명해온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안정적 국가안보를 토대로 정권인수가 이뤄져야 할 시점에 국방장관을 경질한 것이 부적절한데다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임기 중 이란 등을 겨냥해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국방부 내에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밀러 센터장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복무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대테러를 담당한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국방장관 대행에 발탁될 정도의 중량감 있는 인사가 아니라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기간 막무가내식 행보에 나서더라도 저지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라고 NYT는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테러 업무를 담당했던 니콜라스 라스무센은 NYT에 "이런 행보는 그런 메시지를 세계에 보내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시점에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2018년 사임하고 이듬해 7월 취임한 에스퍼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스퍼'(Yes-per)라고 공개 거명할 정도로 '예스맨'에 꼽혔지만 지난 6월초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군 동원을 반대하는 공개 항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지난 7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옹호해온 남부연합기의 군내 사용을 사실상 금지, 경질설에 불을 붙였다. 에스퍼 장관도 사직서를 준비한 상태였다고 NBC방송이 복수의 국방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지난 5일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