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 3개월을 맞이했습니다. 그간 세입자의 거주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는 등 권익이 대폭 강화됐지만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전세난이 가중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은 상황입니다. 이에 세 꼭지로 나눠 현 시장 상황과 제도 변화 여부 등을 점검하고 전문가 제언을 정리해 소개합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지난 7월 31일 시행된 이후 3개월이 지났다.
그간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으로 기존 세입자 다수는 계약을 2년 더 저렴하게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 공적 보증 실적 등을 보면 임대주택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갱신청구권 행사가 시작된 9월 5억원 이하 공적 보증 갱신율은 연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갱신계약이 늘고 있다.
서울에선 1~8월 평균이 55.0%였으나 9월에는 60.4%로 뛰었고 전국도 1~8월 평균이 53.9%였지만 9월엔 59.3%로 높아졌다.
하지만 이 같은 효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신규 임대시장에서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로 집을 구하는 임차인들은 전세 품귀 속에 어렵게 찾은 집도 보증금이 수억원까지 폭등한 경우가 많아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정부와 여당도 전세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아 전세난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강남→서울→수도권→지방으로 불붙은 '전세난'
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22% 올라 전주(0.21%)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이는 2015년 4월 셋째 주(0.23%) 이후 5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여름까지 약 20개월 동안 연속으로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준으로 관리됐으나 가을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부터는 매주 0.10% 수준으로 상승하다가 새 임대차법이 본격 시행된 올 8월부터 0.20%대의 주간 상승률로 오르기 시작해 이후 불안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전세난은 서울에서 불붙기 시작해 수도권, 지방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서울에서는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크게 뛰며 전체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새 임대차 법 시행 직후인 8월 첫째 주 강남 4구 아파트 전셋값은 0.30% 올라 서울 전체 권역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르기도 했다. 이 권역은 이후에도 다른 권역보다 매주 0.01∼0.11%포인트까지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외곽 지역의 전셋값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지난 주 동작구(0.09%→0.14%), 금천구(0.07%→0.12%), 성북구(0.09%→0.11%), 도봉구(0.06%→0.09%) 등 상당수 지역이 전주보다 상승 폭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향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3주 연속 0.08% 상승으로 횡보하다가 지난 주 0.10% 오르며 4주 만에 다시 상승 폭을 키웠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지난 주 0.23% 상승하면서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수도권 전셋값은 8월 첫째 주 0.22% 올라 올해 최고점을 찍은 뒤 2개월 가까이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지난달 3주 연속(0.14%→0.16%→0.21%→0.23%) 상승 폭을 다시 키웠다.
전세난에 서울에서 밀려난 수요가 수도권으로 넘어가고 있고, 그마저도 전세가 품귀여서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까지 오른 값을 치러야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 얘기다.
지방도 수도권·전국의 전셋값 상승세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3개월 동안 전셋값 누적 상승률과 그 직전 3개월 상승률을 비교하면 서울이 각각 1.33%·0.93%, 수도권이 2.29%·1.61%로 최근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도 이 비율이 2.18%·1.07%, 전국도 2.24%·1.07%로 2배 이상 컸다.
◇ 강남아파트 2년 만에 4억5천만원 뛰고, 대전도 두달만에 2억원 '껑충'
실제로 전세 계약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면 최근 전세난이 얼마나 심화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전체 5천563가구 규모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는 지난달 전용면적 84.99㎡가 보증금 11억원에 거래됐다.
해당 면적 전세는 2년 전 보증금 8억5천만∼9억2천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 집주인들은 13억원을 부른다. 2년 사이 전셋값이 4억∼4억5천만원가량 오른 셈이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서울 외곽의 소형 아파트 사정도 비슷하다.
금천구 독산동 롯데캐슬골드파크1차 59.96㎡의 경우 지난달 17일 보증금 5억9천만원(31층)에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아파트는 2년 전에는 3억8천만∼3억9천만원이면 전세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은 계약 갱신이 아니라 새로 전세를 구하는 경우라면 2년 전보다 2억원가량을 더 줘야 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힐스테이트영통 62.8㎡는 지난달 21일 보증금 5억7천만원(9층)에 최고가로 전세 계약이 이뤄져 직전 최고가인 6월 4억3천만원(13층)보다 1억4천만원 올랐다.
대전 유성구 상대동 도안신도시 트리풀시티 101.96㎡는 지난달 6억5천만원(27층)에 최고가 전세 거래가 성사되면서 불과 두 달 만에 전셋값이 2억원 뛰었다.
◇ 전세품귀 '역대급'…공급 숨통 틔워 줄 입주 물량도 줄어
새 임대차법 시행 전에도 전세 물건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으나,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 이후 전세 잠김 현상이 심화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저금리 장기화, 실거주 요건 강화, 8·4대책으로 인한 공급 대기 등의 원인이 있지만, 임대차 계약을 연장해 기존 주택에 2년 더 눌러앉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 전세 잠김 현상을 부추긴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전세수급지수는 전달(187.0)보다 4.1포인트 상승한 191.1로,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수급지수는 전세 공급 부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1∼200 사이 숫자로 표현되며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공급 부족을, 낮을수록 수요 부족을 뜻한다.
전세수급지수는 올해 1∼4월 150선에서 5월 160을 넘겼고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8월에는 180.5로 대폭 오른 뒤 9월 187.0, 10월 191.1로 꾸준히 상승하며 '최악의 공급 상황'으로 볼 수 있는 200선을 향해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