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플루엔자(독감) 예방 무료 접종에 쓰일 백신 일부가 배송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가 접종사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는 상온에 노출된 독감 백신을 모두 수거해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한 뒤 문제가 없으면 접종을 순차적으로 재개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이 백신을 다시 쓸 수 있을지는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백신 속 단백질이 온도 변화로 인해 변형되면 백신의 효능이 변하거나 아예 효능이 없는 '맹물 백신'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면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독감 백신은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해 만든 사(死)백신이어서, 홍역이나 수두 백신처럼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넣는 생(生)백신보다는 온도 변화에 덜 민감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앞서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독감 백신은 로타바이러스 백신 등과 함께 열에는 민감한 편이다.
업계에서는 자체 연구를 통해 독감 백신이 상온에서 최소 1달 정도는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백신 업체들은 백신이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일정 기간 방치될 때 등을 대비해 안정성을 알아보는 실험을 하는데, 보통의 보관 상태보다 높은 온도나 습도 등을 조건으로 두고 제품의 변질 여부를 알아본다.
국내 기업이 생산한 4가 백신의 경우 이런 실험에서는 상온(25도)에서 최소 1달, 길게는 수 개월간 상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국가 접종사업에도 이런 4가 백신이 쓰인다.
그러나 이는 제조사 자체의 실험 결과이고 외부 변수가 반영되지 않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국가 사업 대상이 아닌 3가백신의 경우 2주가 지나면 구조가 변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백신 관련 비영리단체인 PATH(Program for Appropriate Technology in Health)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백신업체 사노피파스퇴르의 제품인 박씨그리프주는 25도에서 2주간 노출되면 단백질의 구조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보고됐다. 반면 또 다른 업체인 크루셀의 인플렉살 브이는 25도에서 4주간 있어도 구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두 3가백신은 모두 37도에서는 24시간 만에 변질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독감백신은 배송 과정에서 일부 기사들이 냉장차의 문을 한참 열어두거나, 판자 위에 박스를 쌓아두고 확인 작업을 하면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히 얼마나 오래 상온에 노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수주씩 상온에 방치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제약사 관계자는 "상온에 몇 시간 노출됐다면 안정성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생산한 지 얼마 안 된 백신이니 역가도 떨어질 리 없다고 본다. 또 산도(pH) 변화가 있더라도 약간의 변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중한 입장이다. 유통 과정상 문제가 확인된 만큼 관련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품질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한 뒤 접종 재개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인플루엔자 백신은 사백신이고, 사백신은 생백신보다 (냉장 온도에) 덜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것은 전문가의 의견과 품질검사를 진행해서 판단을 엄밀하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은희 식약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장 역시 전날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게 되면 품질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제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효능을 나타내는 단백질 함량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와 함께) 더 광범위한 검사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제품 전반의 품질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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