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 소국 벨라루스에서,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압승으로 나타난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야권의 불복 시위가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에도 수도 민스크에서 15만명 이상의 시민이 참가한 대규모 저항 시위가 계속됐으며, 지방 도시들에서도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민스크에선 시위대가 수천 명씩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시내 주요 도로를 따라 가두행진을 펼치며 시위를 벌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시위대에 물과 음식을 나눠주며 지원했다.
시내 곳곳엔 폭동진압부대 오몬(OMON) 요원들과 경찰이 배치돼 시위대의 행진을 차단하는 한편 일부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했다.
민스크 시내 북서쪽 '국기 광장'(State Flag Square)의 대통령 관저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됐고, 관저 지붕에선 검은 복면을 한 군인들이 경비를 펼쳤다.
또 시내 일부 지역에도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AK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 등이 배치됐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이날 수천 명의 시위대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관저 가운데 한 곳과 고위 정치인들의 거주지가 있는 민스크 북서쪽 외곽 고급 거주 지역 '드라즈디 마을'까지 진출했다.
이들이 관저 주변을 에워싼 오몬 요원 및 내무군 병력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비 병력이 공중으로 공포탄을 발사하기도 했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다.
현지 경찰은 이날 민스크에서만 250명 이상의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민스크 외에 서남부 도시 브레스트, 동남부 도시 고멜 등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벨라루스에선 지난달 9일 대선에서 26년을 장기집권 중인 루카셴코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한 것으로 나타나자 정권의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에 항의하며 루카셴코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야권 지도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과 경쟁한 여성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의 주창으로 정권 교체 준비를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저항 운동을 이끌고 있다.
루카셴코는 그러나 야권 시위를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권 찬탈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자진 사퇴와 재선거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지 수사당국은 조정위원회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조정위원회 간부회 임원 7명 가운데 6명이 체포되거나 외국으로 강제 출국당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벨라루스 대선을 부정선거로 결론내리고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경고했다.
하지만 벨라루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옛 소련 '형제국' 러시아는 여전히 루카셴코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14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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